(제부가 제주도 여행에서 찍어서 보내준 사진)
태풍 ‘마이삭’이 지나갔다.
강풍에 고층 아파트 창문도 날아가고 파도가 도로까지 넘어오는 등 피해가 있긴 했지만 예상보다는 세력이 약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제 다시 태풍 ‘하이선’이 올라오고 있다. 당초 예상 경로와 달리 우리나라에 상륙하지 않고 동해로 빠져나갈 것으로 마음을 바꾼 것으로 보여 또 다행스럽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예보만 들어도 우리는 긴장을 한다.
대비를 철저히 하라는 방송을 듣지만 우리 힘으로 아무리 만반의 태세를 한들 막상 태풍과 마주치면 우리 힘으로 어찌 상대할 수가 있을까. 다행히 피해 갔다고 한시름을 놓아도 이름을 달리하며 또다시 이어져 오는 태풍이 또다시 우리를 긴장시키곤 한다.
집채만 한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오고, 수십 년 된 나무를 뿌리째 뽑아 쓰러뜨리고, 밤새도록 허공을 맴돌며 윙윙거리는 태풍이라도 어찌할 수 없는 곳이 있으니 바로 우리 마음이다. 우리 마음속까지 들어와 뒤흔들어 놓고 깨뜨리지는 못한다.
2013년 그 해도 9월 어느 날로 기억이 난다.
이름 하여 태풍 ‘매미’ 때였다. 밤 사이 태풍이 빠져나가느라 전국에 생채기를 남겼다는 뉴스 보도를 접하면서도 여전히 아침은 일단 출근하기 바빴다. 아파트 현관을 나오니 여기저기 태풍이 후려치고 간 흔적들로 난리였다. 꺾인 나뭇가지들, 나무에서 떨어져 갈 곳을 잃은 나뭇잎들은 여기저기 흩어지며 나뒹굴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 소문 들은 대로 태풍‘매미’는 여운까지 거세었다. 비바람은 그쳤지만 태풍의 꼬리는 길었다.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데 몸이 바람에 몇 번이나 휘청거렸다. 역에 도착하니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이 돌발 상활에 어떻게 할까 궁리하며 시계를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열어보니 학교에서 단체 문자가 와 있었다. 태풍으로 인해 등교 시간이 오전 11시로 늦추어졌다는 문자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원래 부지런하지는 않지만 학교에는 일찍 가는 습관 때문에 시계는 이제 7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다시 집에 돌아와서 잠시 소파에 누웠는데 잠이 들어버렸다.
낮잠이 아닌 아침잠을 잔 것이었다. 아주 단잠을 자고 말았다. 어느 순간 눈을 떠서 벽시계를 보니 10시를 조금 넘고 있었다. TV 뉴스에서 중단되었던 지하철도 다시 운행하게 되었다고 했다. 11시까지 출근해야 하니 아직 여유가 있었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무심코 핸드폰을 확인하는 순간 아! 맙소사~.
내가 잠든 사이 학교에서 다시 문자가 와 있었다. 교사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8시 40분 정시 출근이라는 문자였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낭패감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이들은 11시 등교라는 사실이었다. 늦잠 잔 것에 대한 교장 교감선생님의 질책은 각오하고 받아들이면 되지만 아이들이 와 있었다면 그 감당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죄송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서니 세상이 더 맑아지고 밝아 보였다.
출근을 해서 보니 두 번째 문자를 확인한 시간이 제각각이어서 출근도 제각각이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로 웃으면서 늦은 하루를 시작했다.
11시가 되었는데도 등교를 하지 않은 아이들이 몇이 있었다. 잠결에 나의 전화를 받고 세수도 하지 않고 정신없이 달려온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내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서 엄마한테 연락을 했더니 학교에 갔다는 것이다. 혹시 PC방에라도 간 것인지 의심을 했는데 나중에 엄마한테 다시 전화가 왔다. 집이 조용해서 학교에 간 줄 알았는데 방문 열어보니 자고 있어서 깨워서 보냈다는 것이다.
헐레벌떡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어찌 닮지 않아야 할 것은 나를 닮느냐?”라며 나의 지각 출근을 이야기해 주었다. 태풍을 닮은 소통에 교실의 공기는 가벼워지고 시야가 맑아지고 마음은 넉넉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태풍 속에서도 편안한 단잠을 자고 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이름만 다를 뿐 우리 삶에는 시시때때로 태풍이 온다.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행로와 세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우산을 들어도 소용없는 비바람을 몰고 올 때도 있다.
태풍이 아니고서는 적도의 열기를 식히고 극지방의 냉기를 데워 줄 수도 없고, 바닷속 깊은 곳까지 산소를 공급하고 청소해 줄 수도 없다니 우리는 그저 태풍이 하는 일을 이해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거처를 돌아보고 약한 곳, 허물어져가는 곳을 돌아보듯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도 태풍이다. 태풍이 큰 소리로 우리를 흔들지 않으면 바쁜 일상에 좇겨 사는 우리가 마음의 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우리 재산을 앗아가고 크고 작은 상처를 내기도 하지만 우리 마음만은 태풍 속의 고요를 누리고 싶다. 태풍 속에서도 단잠을 자고 싶다. 태풍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마는 태풍이 지나고 나면 다시 웃으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
제아무리 태풍이라 해도 이 또한 지나가는 바람이기에 …….
(동생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활짝 웃는 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