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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Oct 09. 2020

네 잎 클로버 속의 세 잎 클로버들

~삶을 사랑하고 배움을 즐기며~

  퇴직 후, 물고기가 물을 그리워하듯 때로는 학교에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 

 잠시 기간제로 근무했던 그 학교 교장선생님은 독서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무척 좋아하셨다. 결국 교장 선생님은 수필집을 내셨다. 

 

 책 제목은 “삶을 사랑하고 배움을 즐기며”였다. 

잠시 머물다 가는 나에게도 책을 주셨다. 너무 고마웠다. 

책이 쉬우면서도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다. 

 

 책값을 돈으로 드리기가 어색했다. 간단히 소감을 쓴 카드와 사탕 한 봉지로 책값을 드렸다. 교장선생님은 그 작은 정성을 너무 고마워하며 짧게라도 독후감을 부탁해 왔다. 좀 부담스러웠지만 그냥 편하게 생각하고 느낀 대로 써드렸다. 나중에 교장선생님은 2쇄 발간 부록에 그 독후감을 실었다.       

 


 삶을 사랑하고 배움을 즐기며! 

좌우명으로 삼고 싶은 책 제목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책 제목처럼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냥 덮기 아쉬워 다시 천천히 훌렁훌렁 넘겨보았다. 이 책을 만난 것은 뜻밖에 네 잎 클로버 한 장 건네받은 듯 잔잔한 행운이었다. 네 잎 클로버를 코팅해서 책갈피에 끼워두듯, 두고두고 가끔씩이라도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책 속은 온통 행복을 상징하는 세 잎 클로버밭이었다.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늘 내 곁에 있어도 내가 소중한 줄 몰랐던 이야기들이었다. 느끼면서도 표현을 할 줄 몰랐던 어린 시절 이야기들, 책에서 받은 감동들,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삶의 이야기들. 세 잎 클로버처럼 쉽게 찾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을 일깨워준 책이었다. 세 잎 클로버들로 엮어진 행운의 네 잎 클로버였다.     



 <숨기고 싶은 철없던 시절 이야기들>     

 미소를 지으면서도 나를 돌아보게 했다. 지금의 교장선생님이 초등학교 때에 구구셈을 못 외워서 나머지 공부를 했다고 하면 아이들은 얼마나 재미있어하며 자신감과 희망을 느낄까! 구구셈을 못 외웠어도 교장선생님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주셨다. 차마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구구셈도 못 외우는 아이라고 내심 구박하는 일은 없었는지, 시험성적 숫자를 아이들의 능력의 척도로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나를 되돌아보았다.           

 


 <재미있는 세계 명작 동화책> 

 동화책을 빌려보기 위해 책 주인인 친구를 대신해서 열심히 당번활동을 했단다. 가난해서 더 멋있게 보인 문학도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했다. 가슴이 아렸다.

 초등생 때부터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의 농사를 돕기 바빴기에, 책을 읽고 싶어서 비 오는 날을 너무 좋아했단다. 아직도 몸이 기억을 하는지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책이 읽고 싶어 진다니 슬프면서도 부러웠다.     


 

 <게으름을 부리지 않는다는 뜻의 ‘무일(無逸)’.>

 너무 게으르고 포기도 잘하는 나에게 채찍을 가한 말이다.

방학 동안 잘 돌봐주지 못한 교실의 방울토마토, 다 시들어가고 있었는데 목마름과 씨름하며 끝까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열매를 맺었고, 고사 직전이던 동백나무가 꽃을 피워낸 사연은 나의 주어진 삶을 대하는 자세를 가다듬게 했다.      


 

 <나는 감사한다>

 메말라가던 나의 감사의 샘을 다시 흐르게 했다.

특히 몸도 마음도 강하지 못해서 여느 아내나 엄마처럼 유능하지 못한 나를 불평 없이 늘 이해해주는 가족들의 얼굴이 책의 여백으로 보이는 듯했다.          


 

 <봄날, 벚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억지로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왜 자꾸 잊어버릴까! 

어쩌면 인생이란 그저 꽃이 피길 ‘기다림’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는 말을 가슴에 되새겼다. 아이들이 가르치는 대로 바로바로 깨닫고 잘할 수 있길 다그친 조급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긴 한숨이 나왔다.      


 

 <산과 나>

 스승이자 벗인 산이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교장선생님이셨다. 늘 눈으로만 보던 산만 생각했는데 마음속에 ‘삶’이라는 산이 또 하나 있다는 것이다. 떨쳐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도 분명 넘어야 할 산이라고 한다.

정말 내 이마를 때리듯 바로 그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살아오면서 내가 떨쳐버리지 못해서, 비우지 못해서 내가 넘지 못한 산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이런 말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나이 듦의 증거이겠지만 남은 삶에서는 버리고 비우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내 앞의 산들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리라 마음먹게 했다.            

 


삶을 사랑하고 배움을 즐기며! 

글을 읽으며 또한 나를 읽은 듯했다.

수십 년 전의 일을 마치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해주어서 자신이 건망증이 심하다는 책 속의 말은 겸손이 아닌가 싶다.      


 글을 읽는 동안 행간과 가장자리에는 늘 산이 있었고 꽃이 있었고 새소리가 들리는 듯, 자연을 통한 깨우침이었다. 가까이 있어서 소중한 줄 몰랐던 세 잎 클로버들로 내 마음을 행복하게 한 책이었다.           

 


 삶을 사랑하고 배움을 즐기며!

책을 덮어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한 책이었다. 

네 잎 클로버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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