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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Oct 26. 2020

가을 햇살 속의 해피엔딩

~ 산책길 동영상 ~

  어느 일요일 늦은 오후, 산책에 나섰다. 한가해서가 아니라 가을날이 좋아서였다.  짧은 가을이 사라져 버리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산책을 하고 싶었다.  가족들이 모두 외출 중이어서 혼자 나서길 망설였으나 가을 햇살이 너무 아까웠다. 하던 일을 잠시 접어두고  혼자서라도 산책을 나섰다. 집을 나서자 부드럽고 따사로운 가을 햇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코로나로 갇혀 지내기에 답답해서인지 아파트 뒷길 산책로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운동복을 입고 혼자서 조깅을 하는 청년,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신혼 분위기의 부부,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손을 잡고 걷는 엄마, 어린 자녀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전거를 타는 젊은 부부들, 사회적 거리를 두고 말없이 걷는 장년의 부부, 운동이 절실해서 서로 부축하며 걷는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주말 오후 가을의 정취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산책길은 활기가 느껴졌다. 


 혼자서 또는 가족끼리 산책을 하는 사람들 모습은 청명한 하늘과 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우러져 한 편의 가을 동영상이었다. 순차적으로 만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삶을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동영상 파노라마였다. 

 산책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미처 찍어두지 못한 지난 삶을 돌아보게 했고 남은 삶의 예고편을 보여 주었다. 그들과 가을 햇살을 받으며 함께 인생길을 걷듯 산책을 했다.   



 유모차를 타고 산책을 나온 아기도 있었다. 말로 표현은 하지 못해도 이 가을 햇살 속에 누워서 보는 세상은 흰 구름 떠가는 맑은 가을 하늘과 엄마 아빠의 미소일 것이다. 아기들이 느끼는 아빠 엄마의 사랑은 따사로운 가을 햇살일 것이다. 두런두런 나누는 엄마 아빠의 귀에 익은 목소리에 세상 부러울 것 없을 것이다. 편안해서 잠에 빠져들 수도 있다.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모르는 나를 보고도 ‘안녕’하며 손을 흔든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손뼉을 쳐주며 칭찬을 보냈더니, 두 손을 머리에 얹어 하트를 그려 보낸다. 나이를 잊어버리고 나도 옆구리를 기울이며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냈다.          

 


 이 가을, 엄마 아빠가 밀어주는 유모차를 타고 가는 아기도,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어린아이도 가을 햇살 닮은 사랑 듬뿍 받으며 흡족해 보였다. 가을 햇살 속에 터뜨려지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에 눈앞이 더 환해졌다.      

 젖 먹던 시절, 가을 햇살과 함께 받은 부모의 전폭적인 사랑이 기억 속엔 없어도 몸과 마음엔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 믿고 싶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하는 삶의 원초적인 에너지가 저장되고 있는 것 같았다.            

 

           (~아기들처럼 가을 햇살에 활짝 웃고 있는 산책길의 꽃들~  )


 혼자서 헉헉대며 달리는 청년은 한여름 저녁 산책길에서도 가끔 봤던 청년이다. 혼자서 공원을 뛰고 있는 청년을 참 오랜만에 봐서 인상적이었다. 실내 스포츠센터에는 운동하는 남녀노소가 우글우글하지만 밖에 나와서 땀 흘리며 달리는 청년은 보기 드문 요즈음이기에 내 눈길을 멈추게 했던 청년이다. 나름대로 사정도 있겠지만 적어도, 부실하고 허접한 체력을 키우기에 앞서 몸매를 만든다며 실내 스포츠 센터만 고집하는 사람들과는 달라 보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지만 땀방울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노라면 따라오는 고통 앞에서 쉬이 주저앉지 않고 혼자서도 잘 이겨나갈 자생력의 열매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젊음을 보여주는 패기와 열정이 보기 좋았다. 그날도 달리고 있는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이 가을 햇살처럼 빛나는 삶을 응원했다.          

 


 자녀들 없이 산책 나온 나이 든 부부들은 대부분 말이 없다. 주로 걷기만 한다. 몇십 년 살다 보니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침묵이 불편하지 않는 편안한 부부가 되어서 그런 것이리라 이해를 한다. 하지만 익숙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 또한 우리들이기에 데면데면해지는 것은 아닌지 서글픈 마음도 든다.      

 코로나 여파인지는 몰라도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산책하기에는 가을 햇살이 아깝지 않은가. 부부 탐구하러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 가을 햇살에, 오래 살아온 부부의 무덤덤함도 좀 더 따사로워졌으면 했다. 가을 햇살에 울긋불긋 곱게 물드는 단풍처럼, 산을 다시 아름답게 수놓는 단풍처럼…….     

 


 가을 풍경화 속에 대미를 장식해주는 부부가 있었다. 희끗희끗한 회색빛 머리의 어느 노부부였다. 언젠가부터 산책길에서 내 눈길을 끄는 부부였다. 아니 솔직히 나의 부러움을 사는 부부였다. 할머니가 다리가 아픈지 한쪽 손은 지팡이를 잡고 한쪽 손은 할아버지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걷는다. 할머니의 느린 걸음마에 맞추느라 할아버지는 답답할 만도 한데 전혀 그런 내색이 보이지 않는다. 느린 걸음에 장단을 맞추며 힘을 부추긴다. 재미있어하며 웃는 할머니의 표정에는 깊게 패인 주름에도 허물어지지 않은 단단함이 느껴졌다. 황혼이혼이 증가하고 있다는 요즈음, 저 연세에 저렇게라도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꾸 눈길이 갔다. 그날도 가을 햇살에 퍼지는 노부부의 뒷모습의 아우라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나도 우리의 삶을 담은 한 편의 동영상 속에서 출연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혼자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그냥 그저 이 가을이 좋고 감사할 뿐이었다.

눈을 들어 쳐다보기만 해도 가슴까지 줌(zoom)으로 당겨지는 청명한 하늘이 좋았고,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눈부신 가을 햇살이 좋았다.


 그 가을 하늘 아래 가을 햇살 받으며 감이 열리고 은행이 영글어가고 단풍이 물들어 가고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피고, 코스모스가 춤을 추고 있었다. 내 것은 아니지만 값없이 이 모든 것을 마음껏 보고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했다.      



역시 혼자서라도 나서길 잘했다.  가을 햇살 속의 해피엔딩이었다.    

  (~ 산책길에 만나 값없이 마음껏 보고 즐긴 가을 정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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