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임에서 자주 뵙는 분이었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이였지만 그저 마주치면 인사를 하며 지내는 정도였다. 어느 날인가 인사를 하면서 “안녕하세요? 머리띠가 참 예쁘시네요.”했다. 평소에는 “안녕하세요?”라고만 하는데 그날은 좀 더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한 마디 덧붙였을 뿐이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그분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털어놓았다. 자기 머리띠를 보고 왜 다들 시큰둥하느냐는 것이다. 일대일로 누구를 욕하는 것은 아니지만 머리띠를 보고도 그냥 지나친 사람들을 모두 다 싸잡아서 욕을 하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자기의 그 머리띠가 보통 머리띠가 아니어서 괜히 사람들이 자기를 시기 질투하고 자신을 사치하는 여자로 은근히 비아냥거리는 눈치라는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그럴 리가 없다고 다독거리면서도 그분의 지나친 반응에 황당했다.
알고 보니 그 머리띠는 내가 생각했던 그런 차원의 머리띠가 아니었다.
오다가다 길거리 리어카 노점상에서 산 것도 아니고, 작은 액세서리 가게에서 산 것도 아니었다. 소위 잘 나가는 전문직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위해 백화점에서, 그것도 명품 매장에서 사준 몇십만 원짜리 명품 머리띠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의 소극적인 리액션이 너무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명품을 몰라보고 그냥 지나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니 서운했던 것이다.
들을수록 더 가관이었다.
자신은 그저 며느리가 선물해 준 머리띠를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자기를 사치하는 여자로 취급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고까지 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사실 나도 그 머리띠의 품격을 알아보고 인사를 한 것도 아니었으니 속으로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 머리띠가 명품인 줄도 몰랐다고 했다가는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마치 나는 그 가치를 알아봐 준 것처럼 믿고 자기 속내를 털어놓는 그분이 참 딱했다. 그저 아무리 봐도 몇십만 원짜리로 보이지 않는 내 안목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나는 액세서리 마니아가 아니어서 돈 주고 액세서리니 머리띠니 하는 장식품을 사는 일이 거의 없다. 명품을 손에 쥐어줘도 명품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날도 그저 모양과 장식은 달라도 다 같은 머리띠로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에 그렇게 의미를 붙이고 나름대로 해석까지 하면서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 그분을 보면서 명품의 힘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어찌 되었든 명품을 알아보지 못해 발생한 일이었다. 몇십만 원짜리를 몰라보고 오천 원이나 만 원짜리로 알고 편하게 대했다가 나도 당사자를 불쾌하게 한 것이 되고 말았다.
명품!
그것도 자신이 명품을 알아보고 의미를 둘 때 명품이지 나처럼 보고도 모르는 사람은 명품도 의미가 없다.
몇 년 전 동생이 소위 명품 핸드백을 나에게 준 것이 있다. 나는 그것도 동생이 명품이라고 하니 명품인 줄 알지 왜 명품인 줄 모른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 백을 들고 외출한 적이 없다. 그저 비싼 것이라 하니 집에서 중요한 서류를 보관하는 가방으로 쓰고 있다. 정작 내가 사용하는 것은 그때그때 필요를 따라 사용하는 것들이다. 시장 갈 때는 물건을 많이 넣을 수 있는 넉넉한 쇼핑백이면 되고 , 사람을 만나거나 볼 일을 보러 나갈 때는 행여 도중에 기다리는 시간이 나면 무료해질까 봐 작은 책 한 권과 핸드폰 정도 들어가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나선다. 설령 명품 가방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것을 자랑하고 싶지도 않고, 명품 가방으로 내 품위가 올라간다고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친정엄마가 나에게 모피 코트를 주었다. 멀리 외국에서 올케언니가 시어머니께 선물한 것을 엄마는 나이 많아서 외출할 일도 없다고 직장 생활하는 나에게 주었다. 물론 윤기가 흐르는 모피코트가 따뜻하고 가볍고 품위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한겨울 추위에 모자가 달린 파카가 더 편했다. 올케언니가 엄마 입으라고 보낸 것은 내 옷이 아니었다. 괜히 미안해하면서 입고 싶지 않았다. 내 옷이 아닌 것을 걸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돌려보내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편했다. 명품도 마음이 안 편하면 명품이 아니었다.
그날 그 머리띠로 한바탕 난리를 피운 분은 스스로 명품에 너무 비중을 두고 생각하고 판단해서 감정이 널뛰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그때 그 머리띠가 무슨 색깔이었는지 어떤 무늬가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명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혼자 마음대로 해석하고 막말을 하던 그 모습이 명품과 대비되며 기억에 남아 있다.
명품!
여우의 신포도처럼 내가 못 가져서 다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살다 보면 싼 게 비지떡이라고 이왕이면 좋은 것이 이익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나의 필요에 의한 것이고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남에게 과시하고 인정받기 위한 수단은 아닌 것이다.
명품으로 부러움을 사도 잠시 순간적인 것이다. 진정 내 품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니 남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까지는 없다.
그것을 알아봐 주지 않으면 괜히 남들이 자기를 시기 질투하는 것으로까지 오버를 하는 것은 오히려 명품을 싸구려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 사실 그것도 다 자기 마음일 뿐이다. 거기에 가치를 두는 것도 자기 마음이고 자기중심이다. 명품이라 해도 거기에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은 부러움도 시기 질투도 없다. 자유로운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액세서리니 명품 옷이 별 것이 아니었다. 퇴직을 하고 나니 더더욱 그런 것에서 자유롭다. 심지어 높은 지위나 권력도 그저 잠시 각자의 일을 위해 주어진 자리일 뿐이었다.
지위나 물건에 명품이 따로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인가?
얼마이상이면 명품인가! 어떤 직업, 어느 위치이상부터 명품인생인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진정한 명품은 사람 그 자체였다.
그 사람의 진정성이었고 삶이었다.
언젠가 TV에서 본 대박집 사장님이 생각난다. 하루 매출이 수백만 원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온종일 열심히 일하고 하루 매출을 정산하고 수백만 원의 현금을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서 집으로 가져갔다. 집에서는 은행에서나 사용하는 돈 세는 기계로 돈을 세고 있었다. 사장님은 많은 돈을 가지고 가기에 남의 시선을 끄는 명품백보다 검은 비닐봉지가 더 안전하고 실용적이라고 했다. 명품백이 부럽지 않다고 했다.
속이 영글어서 내면이 단단한 사람, 사람들의 평가와 찬사가 뭐 그리 대단하랴. 관심이 없어서 명품 머리띠를 알아보지 못했다. 살아오면서, 흔하지 않지만 명품 사람만큼은 알아볼 수 있었다. 어느 광고 문구가 말했듯이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진솔한 명품 사람들, 나는 그들을 ‘내가 만난 천사’라고 부른다. 이것도 나의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