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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Oct 30. 2020

황금빛으로 물드는 은행나무처럼

~ 곱고 아름다운 동병상련의 천사 ~

  몇 년 전, 어느 가을날이었다. 퇴근 시간이 땡 하자마자 부리나케 우체국으로 향했다. 친정에 송금을 하기 위해서였다. 우체국 문 닫기 전에 도착하려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오후 6시 전, 셔터가 내리기 전에 우체국 안으로 골인을 했다. 안도감의 한숨을 쉬었다. 우체국 안에는 나처럼 막차를 탄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번호표를 뽑아놓고 기다리는 동안 송금을 하기 위한 전표를 미리 썼다. 내 번호가 호명되어서 창구로 가서 돈과 전표를 내밀었더니 금융 업무는 이미 마감되었다는 것이다. 우편업무와 달리 금융 업무는 오후 4시에 마감을 한다는 안내였다. 너무 허탈했다. 업무 시간을 알고 보니 조퇴라도 하고 와야 송금이 가능한 일이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미리 써둔 전표와 돈을 다시 챙겨 넣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창구 여직원이 “시골 부모님께 보내려나 보죠?”라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헛걸음 한 내게 괜히 겸연쩍어서 그러나 보다 하며 나도 무심코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친정엄마가 시골 노인이라 은행이나 우체국까지 가서 돈을 찾기 힘들어서 현금으로 받을 수 있게 하려고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여직원이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생각하더니 발길을 돌리려는 나를 불렀다. 공적으로는 안 되지만 사적으로는 도와드릴 수 있다고 했다. 자기에게 맡겨주면 오늘은 이미 마감해버려서 할 수 없고, 내일 업무 시작하면 대신 접수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뜻밖의 선처에 선뜻 부탁을 하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직원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 염치가 없었다. 그러자 여직원이 말했다. 자기도 시골에 혼자 사는 친정아버지가 계셔서 늘 이렇게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송금을 할 수밖에 없어서 내 사정을 한눈에 짐작을 했다는 것이다. 


 

 사정을 이야기 해볼 엄두도 내지 않았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딴 세상으로 순간이동을 한 느낌이었다. 종종걸음으로 달려온 나를 알아본 여직원을 보며 속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솟았다. 길게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힘없는 목소리로 “그래도 될까요?”라며 여직원을 그윽이 쳐다보았다.           

 요즘 다 통장으로 입금을 시키는데 이렇게 직접 현금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은 거의 자기처럼 시골에 혼자 사시는 부모님들에게 송금하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심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송금 시간이 지났다고 외면하고 나면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자기 마음 편하려고 도와주는 것이니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날개 없는 천사’를 만난 기분이었다. 내 형편 아시는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도 같았다.


 

 하루 종일 맡은 업무만 해도 시간에 쫓겨 왔을 텐데 낯 모르는 내 사정까지 살펴주니 ‘고맙다’는 한 마디 말로 다 표현이 되지 못한 고마움의 무게로 가슴이 묵직했다. 돈과 전표와 수수료를 건네주니 여직원은 종이봉투에 넣어서 자기 서랍 속에 넣었다. 초면에 심부름을 시켜서 몸 둘 바를 모른다고 하자  현금 송금이 아주 가끔 있는 일이어서 시간을 뺏는 일이 아니라며 걱정 말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부탁은 했지만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서 연신 뒤돌아보며 허리를 굽혔다.          

 


 우체국을 나서서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가로수 은행잎을 바라보며 걸었다. 나이 지긋한 그 여직원의 웃음 띤 얼굴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은행잎과 자꾸 겹쳐지며 반짝거렸다. 숨을 쉬는 공기까지 감미로웠다. 큰 일을 해결한 듯 여유로운 마음으로 걸었다.     

 다음 날, 첫째 시간 수업을 마치고 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송금 접수 영수증 사진이었다. 감사 답장을 보냈다.  아이들에게 ‘내가 만난 천사’라며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만난 천사가 아이들 마음속으로 날아간 듯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다음 날 친정엄마한테 전화하니 돈 잘 받았다고 했다.


 

 몇 달 후 해가 바뀌고 우체국 가는 길에  음료수를 사서 들렸다. 하지만 그 여직원은 퇴직을 하고 자리에 없었다. 다른 젊은 여직원이 바쁘게 일 처리하느라 얼굴을 들고 이야기할 사이도 없었다. 더 이상 뭘 물어보고 말을 붙이기 미안해서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코로나 시대에도 여기저기 은행나무 가로수가 가을 햇살에 빛나고 있다. 오며 가며 볼 때마다 은행잎 사이사이로 그 여직원이 가을 햇살에 반짝인다. 동병상련을 헤아려주던 그 나이 지긋한 여직원을 떠올리면 이 가을이 더 곱고 아름다워진다. 


그리고 기도하고 싶어 진다.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는 은행나무처럼 나이 들 수 있기를…….     

                                                     (산책길에 만난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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