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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Dec 13. 2020

12월의 천사

~ 마더 테레사 효과 선물 ~

 눈이 내렸다. 

눈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이 이처럼 세상을 순백으로 덮을 수 있을까. 희고 깨끗한 세상을 선물 받은 날이다. 오늘을 선물로 바꾸어준 흰 눈처럼 진수도 나에겐 선물 같은 존재이다. 진수는 제자이다. 20여 년 전 만난 제자이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늦둥이여서인지 진수에게는 시골 향기가 풍겼다. 그러면서도 세상모르고 자란 온실 속 화초 같기도 했다. 말도 어눌했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하지만 남보다 뛰어나지도 않았다.      

 


 진수 속에는 무슨 씨앗이 자라고 있는지 진수를 보면 왠지 마음이 맑아지고 고요해지곤 했다. 작은 천사를 보는 듯했다. 어쩌다 잘못을 해도 야단을 칠 수 없는 아이였다. 오히려 괜찮다고 다독여 주고 싶을 뿐이었다. 서둘러 본인이 너무 미안해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진수는 군대를 다녀와서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고 연락을 했다.  흙빛으로 그을은 얼굴로 밝게 웃는 모습은 밝은 해를 보는 듯했다. 진수네는 쌀농사가 주요 작물이었다. 가끔씩 텃밭에서 키운 것이라고 약을 많이 친 것 드시지 말라며 상추, 깻잎을 보내 주기도 했다. 진수가 보내주는 상추 깻잎은 작고 볼품이 없지만 농약을 전혀 뿌리지 않고 손수 키운 것이라 마음 놓고 먹었다. 밥상엔 진수의 순수한 마음이 반찬이 되고 화제가 되어 몸과 마음이 진짜 밝아지고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다. 살기 바쁘다 보니 다 그렇게 희미해져 가는 것이라 그러려니 했다. 아주 가끔 기억의 서랍 속에서 꺼내 보기는 해도 잊고 지낼 때가 더 많을 때 소식이 왔다. 그 사이에, 늦둥이여서인지 농사를 함께 짓던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다. 진수가 혼자 농사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농사를 접었다고 했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컴퓨터를 배워서 작은 회사에 취직도 하고 결혼도 했다.      

 그때부터 진수는 밭에서 키운 농작물 대신 매년 12월이면 금일봉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 금일봉은 나에게 무슨 보은의 의미로 보내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를 믿고 의지한다는 의미이다. 자기가 직접 도와주면 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신세를 져서 평생 미안해할까 봐 나에게 부탁한다는 것이다. 



 절대 자기 신분을 밝히지 말고 심부름만 대신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그 심부름을 믿고 맡길 사람으로 나를 떠올렸다니 어찌 거절할 수가 있겠는가. 너무 적은 금액이고 그것을 가지고 자기 이름을 내기는 싫어서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피하고 싶다고 했다. 정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싶은 것이 진수의 진심이었다.           

 

 물론 이름 있는 재벌이나 고소득 연예인들의 금일봉과는 비교되지 않는 금액이다. 하지만 나는 진수의 그 진심이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보배와 같다. 또 나를 믿어주는 것이 고마워서 나는 진수의 심부름을 기꺼이 하고 있다. 한 푼이라도 허튼 곳에 쓰이지 않도록 심사숙고를 한다. 그리고 사용처와 내용과 영수증을 기록으로 남긴다. 진수는 그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심부름을 한 지 3년째이다. 예전에 비해 정부에서 웬만큼 사회복지를 잘하고 있기에 얼마나 끼니를 잇지 못하거나 헐벗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엔 여전히 도움의 손길이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흰 눈이 말없이 세상을 포근하게 덮어준 오늘, 진수는 올해도 마음을 담은 금일봉 선물을 보내왔다. 가끔씩 TV에 얼굴 없는 천사들을 소개할 때가 있다. 그들이나 진수나 기부의 크기는 달라도 핵심은 같다. 그들과 진수는 생각의 치수가 같았다. 기부를 하면서도 자기 얼굴과 이름을 숨기고 싶어 한다.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다. 진수도 말했다. 오히려 자신이  살아가는 보람이고 기쁨이라고 했다. 결코 남보다 더 넉넉한 살림도 아니기에 나를 부끄럽게 한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그만 둘 줄 알았다. 코로나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가 하는 일에 차질이 없었고, 온 식구가 건강하고 자기를 닮아서 아이들이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지는 못하지만 학교에서 착한 일을 해서 칭찬을 많이 듣고 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진수에게서 나간 마음이 진수에게로 다시 돌아온 부메랑이었다.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는 겨울이지만 때로는 하늘에서 내린 흰 눈이 온 세상을 이불처럼 덮어주는 겨울이다. 누군가 진수 마음의 온기에 식은 삶이 데워져서 일어나 창밖의 눈 덮인 세상을 보며 천국을 그려볼 수 있길 기대한다.     

  


 흙에서 무르익은 진수 내면의 맛이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있으리라 믿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질그릇에 담긴 진국처럼, 쉬이 식지 않는 진수의 온기가 세상의 허기를 달래주고 있지 않을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면 별로 한 일도 없지만 진수 덕분에 한 해를 의미 있게 마무리를 한다. 또 진수는 나에게 ‘마더 테레사 효과’를 선물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봉사를 생각하거나  보기만 해도 

신체 내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두고

하버드 연구진들은 '마더 테레사 효과'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내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수의 부탁으로 하는 일이지만 그 일을 하면서 잡념을 이겨내는 면역력도 생기고 내 삶에 맑은 기운을 얻는다. 


진수는 매년 12월의 천사로 나를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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