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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여행자 Aug 15. 2020

후회만 가득한 이별

(나의 사별 이야기) 

아내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사람들로 번잡한 병원 로비에서 눈물을 흘렸다. 단순한 변비인 줄 알았는데 복부에서 만져지는 딱딱한 덩어리들이 암이라니... 나는 애써 아내를 위로했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병원 측의 실수일 수 있다는 허망한 믿음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나도 같이 울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꿈과 같은 현실은 조금의 과장도 없었다. 암세포의 복막 전이. 암은 난치병이라는 것 이외에 암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던 나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다. 그냥 열심히 치병하면 나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만을 붙잡고 암과의 힘든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내도 이내 정신을 다잡고 신앙에 의지하면서 이 모든 것이 선을 이루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아내는 이미 발견 당시 4기였지만 원발 암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아서 내 마음은 더 답답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아내가 난소암인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희망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난소암은 다른 암과는 달리 복막 전이가 되어도 수술이 가능하고 항암제가 잘 듣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내는 항암을 시작하기도 전에 마음을 강하게 먹겠다며 머리를 다 밀어버렸다. 울면서 머리를 다 밀어버린 아내를 보니 내 마음도 너무 아팠지만 나는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아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나는 직장 생활 이외에는 모든 시간을 아내와 같이 보냈다. 아내와 똑같은 건강식을 먹고 같이 찬양하고 운동을 위해 항상 같이 걸었다. 널리 알려진 보조 요법과 식이요법 중에 믿음이 가는 것들은 조심스럽게 열심히 시도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몸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항암제의 효과는 미미했다. 사실 항암제는 오히려 촉암제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항암 주사는 보통 세 번을 일정 주기로 맞고 그 효과를 측정하는데, 첫 번째 항암 주사는 효과가 있어 보였으나, 두 번째는 별로인 듯했고, 세 번째는 몸이 더 안 좋아졌다. 원래는 항암 주사를 세 번 맞고 수술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세 번의 항암 후 암은 훨씬 더 커져서 있었다. 결국 수술은 할 수가 없었고 몸 상태는 더 급격히 나빠졌다. 아내는 하지 부종이 점차 심해져서 걷기가 힘들어졌고 배에는 복수가 차기 시작해서 임산부의 몸처럼 변해갔다. 항암제를 바꾸어도 첫 번째만 효과가 있을 뿐 두 번째 항암부터는 효과가 없었다.     


모태신앙이었던 아내는 이 모든 어려움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나가고자 했다. 자신의 병이 믿음의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병이 나으면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하였지만 나는 내심 불안했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면 아내는 항상 눈물을 많이 흘렸다. 하지만 나는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병세가 계속 나빠져서 신앙으로 병을 고친다는 치유 집회에도 가 보았지만... 이는 사실상 사기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내의 투병 의지는 계속 굳건했으나 나의 신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져 갔다. 그리고 아내의 몸 상태가 계속 나빠져서 이제는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자 나도 이제는 더는 기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아내가 평온한 상태에서 미소를 지으며 하늘나라로 떠나는 것뿐이었다.     


아내는 어느 따뜻한 봄날, 토요일 오후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나는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직도 너무나 죄스럽다. 아내는 내가 병원을 떠나고 한 시간 만에 사망했다. 아내의 몸 상태가 몹시 안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통증으로 너무 괴로워하고 있었기에 나는 며칠은 더 이 세상에 머무르다가 갈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신이 아내를 데려간다면) 적어도 죽을 때는 통증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고 평안한 상태에서 하늘나라로 가게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이없는 착각이었다. 금요일 오후부터 아내는 통증 때문에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나는 청력은 죽기 직전까지도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혼수상태가 되어도 혼자서 좋은 말을 많이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아내와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자, 무슨 망상에 사로잡혔는지 나는 아내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가 말을 못 하게 된 24시간 동안 나는 아내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멍청했을까? 이 생각만 하면 너무 화가 나고 서글프고 후회가 된다.     


아내는 어떠한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투병 의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은 아마 상상하기도 싫었을 것이다. 그 강한 투병 의지가 혼자 남겨질 나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그 죽음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아내와 나는 16년 반을 같이 살았고 그 삶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말다툼 한번 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며 사랑했다. 나의 아내는 항상 나를 지지해 주는 든든한 후원자였으며, 평탄치 않았던 나의 삶을 위로해 주는 내 영혼의 안식처였고, 쓸쓸했던 나의 인생에 마음으로 통하는 반려자였다. 아내가 떠나버림으로 인해 이제 이 세상은 내가 사랑하는 이도 없고 나를 사랑하는 이도 없는 삭막한 곳이 되어버렸다.    

 

나는 오늘도 집을 나서면서 사진 속의 아내에게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또 잘 다녀왔다고 인사를 할 것이다. 사진 속의 아내는 항상 편안한 미소를 나를 반겨준다. 사후생을 믿는 나는 아내에게 종종 말한다.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늘이 푸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좋은 어느 날 나는 너를 찾아 떠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도 나를 찾아와다오.” 아내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늘나라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면서 영원히 같이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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