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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여행자 Aug 24. 2020

꿈에서 다시 만나다

(꿈같지 않은 꿈)

나는 어려서부터 꿈을 자주 꿨다. 편차가 심한 편이지만 최근에는 주 1회 정도 꿈을 꾸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혼 생활 중에 아내가 등장하는 꿈은 한 번도 없었다. 꿈꾸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아내가 꿈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사실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저세상으로 떠나고 나니 꿈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를 내심 기대하게 되었다.     

아내가 내 꿈에 처음 등장한 날은 사별 55일 후였다. 나는 이 꿈을 너무나 생생히 기억한다. 꿈에서 아내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꿈은 전혀 꿈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나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라는 말 한마디만 하고 사라졌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특이했다. 형식은 꿈이었는데 내용은 지금까지의 꿈과 결이 달랐다. 나는 정말 많은 꿈을 꿔왔지만 이렇게 짧고 한 장면뿐인 꿈은 없었다.     


꿈에서 깨자마자 꿈을 이용해서 아내가 나를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힘들게 나를 찾아와 주었다고 생각하니 아내가 참 고마웠다. 아내는 늘 나를 배려하고 걱정해주는 사람이었으니 이렇게 나를 만나러 와주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남들은 그것은 그냥 당신의 욕망이 반영된 꿈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아내가 나를 만나러 와준 것이라고 믿는다. 과학적으로 판단하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사별 후 2주기 무렵인 지금까지 나는 아내의 꿈을 24번 꿨고 그 꿈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내가 이렇게 꿈의 횟수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 꿈들을 모두 글로 적어 두었기 때문이다. 꿈은 휘발성이 강해서 기억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잊혀진다. 아침에 꾼 꿈이 오후에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아내의 꿈은 잠에서 깨자마자 최대한 상세하게 적어 놓았다. 이른 새벽 시간에 꿈에서 깨어도 꿈을 다 기록하기 전에는 다시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덕분에 아내의 꿈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즐겁고 행복한 모습의 아내를 꿈에서 다시 보게 되면 내 마음도 참 좋았다. 하지만 꿈의 내용은 내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꿈도 있었다. 꿈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공간이 급격히 바뀌고 스토리는 일관성이 없이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꿈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꿈의 내용을 기록하고 천천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나의 경험과 생각과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욕망이 가장 잘 드러난 꿈은 23번째 꿈이다. 그 꿈에 나타난 아내는 아주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이국적인 낯선 환경에서 살고 있었는데, 날은 맑았고 공기는 너무나 신선해서 이 세상의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이 꿈에서 내가 아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해주고 꼭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 나는 아내에게 “나는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아”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는 네가 혼자 쓸쓸히 죽게 하지는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시 아내와 헤어졌다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는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미소를 지으며 집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고 너무나 사랑스럽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잠에서 깨고 나서도 정말 행복했다. 내가 죽게 되면 아내가 그 말을 나에게 해 줄 것 같았다.    

 

나는 육체가 죽은 후에도 영혼은 소멸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근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죽음의 경계에 있을 때 먼저 죽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만났다고 증언하고 있다. 나는 이 사람들의 말을 믿기에 내가 죽을 때가 되면 아내가 꼭 마중 나와 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내가 너무 오래 살면 아내가 기다리기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꿈에서 아내가 해준 말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 나를 다시 만나는 날이 늦어져도 아내는 “왜 이렇게 빨리 왔어”라는 말을 해 줄 것 같다. 이 세상에서의 1년이 천상에서는 1분이나 1시간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나는 조금 힘들어도 아내는 편할 수 있으니 이 정도면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별 초기에는 많은 사별자가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증상이 없다. 나는 좋은 꿈을 기대하면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든다. '오늘 밤 꿈에는 아내를 볼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꿈에서 아내를 만나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을 것이다. 나는 먼 훗날에 우리가 진짜로 만나게 될 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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