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는 바라던 공무원이 되었다
"우리 그만 헤어지는 게 좋겠어요. 당신에게 부담이 되긴 싫어요. 미안해요 정말. 이런 모습 보여서."
한 달여만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으로 나타난 그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헤어지자는 것이었다. 아픈 동안 내내 고민하고 또 고민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헤어지자는 말을 왜 자기 입으로 해? 해도 자기한테 속은 내가 해야지.'
사랑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내가 피해자라는 억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멀쩡해 보이던 그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처박히는 모습을 본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는데 내게 왜 또다시 상처를 주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얼토당토않은 그 상황이 끔찍하게 싫었다. 그를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웠고 모든 걸 훌훌 털고 떠나버리기엔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정말이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그가 놓아줄 때 얼른 떠나버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떠나려는 그를 내가 나서서 붙잡았다. 만약 그날, 그가 하소연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거나 막무가내로 내게 매달렸다면 우리 둘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너무나도 깔끔한 단념이, 자신에 대한 완벽한 포기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말았다. 나는 모든 걸 내려놓으려는 그를 도저히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잘 헤쳐나갈 자신도 없는 주제에 우리는 그냥 함께 있기로 선택했다. 솔직히 나는 그보다 더 이별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다시 혼자가 되어버린다면 영영 재기불능 상태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발병하기 전까지 그는 툭하면 내가 사는 원룸에 와서 머물렀다. 집으로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몇 날 며칠을 눌러앉아 있는 게 왠지 이상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어머니는 아픈 아들을 받아준 내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이번 발병이 처음도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아들은 그야말로 아픈 손가락이었기에 아들이 사랑하고 아들을 사랑해 주는 여자의 등장은 감사하고도 다행한 일로 여겼던 거였다. 결국 그와 나는 시부모님의 암묵적 동의 하에 작은 원룸에서 우리만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시장통 원룸에서 월세를 살고 있었다. 중국인, 동남아인 등의 외국인들이 한국인보다 많은 동네였고 이따금 흉흉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밤중에 혼자 길을 나서면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일까지 종종 있었다. 2층에 있는 원룸이었지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 때문에 햇빛 한 줌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조금 무리를 해서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낡은 투룸으로 이사를 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겐 어둠이 위험하다며 시부모님도 적극적으로 이사를 도왔다. 그래서 나는 얼떨결에 서울 변두리에서 경기도까지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
그즈음 회사에서 극심한 업무에 시달리다 큰 병까지 얻게 되었다. 일주일 이상을 자리에 일어나 앉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고 결국 그 길로 퇴사를 해야 했다. 그 역시 출판사에서 나와 다른 직장을 알아보던 중이었기 때문에 둘은 동시에 실직자가 되고 말았다. 우리에겐 몸과 마음의 병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에 먹고살 돈부터 버는 게 시급했다. 나는 실업 급여로 생계를 버티면서 여기저기에 입사 원서를 넣기 시작했고, 그 역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타고난 기질상 불안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사람이었다. 우울증도 내면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불안이 가장 큰 원인일 거였다. 어디든 안정된 곳에 자기를 붙박아두지 않고는 이 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듯했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나는 조용히 그의 수험 생활을 지지해 주었다. 하지만 수도 없이 시험에 떨어지기를 반복했고 '우리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서서히 목을 졸라오기 시작했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그는 궁지에 몰린 사냥감처럼 닥치는 대로 아무 문이나 두드렸다. 자존감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도 이 일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내가 그의 곁에 남아 있기로 결정한 이후부터 그의 우울증 증상이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차츰 그가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조차 잊어가고 있었다.
고달픈 서울 살이에 완전히 질려버렸을 무렵, 나는 네 번째 출판사를 그만두고 또다시 백수가 된 상태였다. 집 앞 초등학교에 가서 멍하니 운동장을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들의 작고 가벼운 발걸음 때문이었을까? 하루는 갑자기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러더니 이내 장맛비 같은 눈물이 주룩주룩 쏟아져 내리는 게 아닌가. 이제 더는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그러기엔 너무 지쳐버렸다고 마음이 내게 악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하려고 하던 그때, 느닷없이 그의 공무원 합격 소식이 날아왔다. 연고도 없는 먼 전라도로 발령을 받았지만 우리는 마냥 좋았다. 운명의 여신이 이제야 우리에게 웃어주나 보다 생각했다. 그와 나는 서울을 신나게 걷어차버린 후, 새로운 삶에 대한 부푼 희망을 품고 전라도의 한 낯선 도시로 무작정 달려갔다.
한 겨울이었지만 햇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따사로웠다. 진짜 행복이 시작될 거라는 설렘으로 가득 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