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위 Dec 02. 2023

어차피,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어차피

 -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 또는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     


‘어차피’는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이방원이 지어 불렀다는 ‘하여가’를 떠오르게 한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칡넝쿨이 얽힌 들 그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한평생을 누리니.     


조금은 맥이 풀리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말.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한 번쯤은 눈 감고 귀 닫고 나 몰라라 해도 상관없다고 다독여주는 듯한 말 ‘어차피.’ 살다 보니 알았다. 어차피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그러니 어떻게 해 보려고 너무 자신을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된다며 나의 무능이나 나태에 면죄부를 쥐여주는 고마운 말 ‘어차피’. 그 말에 기대어 나는 종종 다리를 뻗고 다. 인생에는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내 소관이 아닌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음을 알기에....


어차피,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살다 보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나의 바람이나 의지와는 무관한 뜻밖의 일들이 자판기에서 나오는 음료수처럼 눈앞에 툭툭 떨어지곤 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의 자판기에선 내가 누른 버튼에 적혀 있는 것이 나오겠지만 인생의 자판기에선 생각지도 않은 것들이 느닷없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누른 버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예 누른 것 같지도 않은데 음료수 먼저 튀어나올 때도 있다. 우리는 그 음료수를 손에 쥐고 함박웃음을 짓기도 하지만 오만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그저 망연자실해지기도 한다. 그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인생사 어차피 내 소관이 아닌 걸 아등바등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진다. 하지만 이따금 기대하지도 않았던 좋은 들이 선물처럼 찾아올 때괜스레 힘이 나고 살맛도 난다.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인생인 것이다.     


8급 공무원에서 7급 공무원으로 승진할 때였다. 승진 순번이 바로 코앞까지 왔는데 불행히도 정기 인사 시즌이 아니었다. 상황상 나는 중간 발령을 받을 예정이었고 그렇게 되면 내가 사는 지역이 아닌 도 내의 다른 도시로 튕겨 나갈 처지였다. 다른 동료들도 대부분 7급 승진을 하면서 집과는 거리가 아주 먼 지역으로 발령을 받곤 했다. 나는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었고 남편의 건강도 여의치 않은 상태였기에 타 도시로 발령받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승진을 미루고서라도 그 도시에 남 었다. 하지만 공무원 조직이란 곳이 개개인의 편의를 봐줄 수 있는 세계는 아니었다.


하루하루 불안에 떨다가 결국 승진 발령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존에 근무하던 곳보다 오히려 집에서 가까운 시내 학교로 발령이 난 것이.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다. 발령받은 자리에 가보니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전임자가 갑자기 암을 발견해서 급하게 병 휴직을 냈고 그 시점이 나의 승진 시점과 정확히 일치했던 것이다. 물론 그분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게 절묘한 타이밍이어서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덕분에 나는 그곳에 근무하면서 아이를 유치원에 직접 등하원시킬 수 있었고 3년 동안 평온하게 근무할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때 드는 생각은 이랬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과연 내가 어디까지 통제하며 살 수 있을까? 스스로 자기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나 오만이 아닐까. 막상  의지 수 있것은 별로 없으면서 말이다.     


나는 지금 휴직 중이다. 그런데 남편의 상황이 많이 안 좋아지면서 남편도 함께 휴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 가족으로서는 부부동반휴직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가정 경제에 심각한 어려움이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남편이 회사에 휴직을 통보하던 날, 나는 남편과의 전화를 끊고 한없이 착잡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1분도 지나지 않아 부동산 공인 중개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을 내놓은 지 9개월 만에 정말이지 처음으로 받는 전화였다. 그것도 우리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게 아닌가. 그분은  놀랍게도 일주일 만에 잔금까지 치르면서 집을 매매했다. 이 모든 게 다 거짓말 같았다.


나는 그날 너무 놀라서 하늘을 여러 번 쳐다보았다. 이런 기가 막힌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기도 하는구나. 절망의 날이 일순간에 희망의 날이 되기도 하는구나. 덕분에 우리는 대출도 갚았고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고충이 조금 줄어들었기에 남편은 덜 무거운 마음으로 휴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살다 보면 대체 무슨 일이지 하는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물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 좋은 일들이  연속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왕이면 기적 같았던 일들만 기억하고 가슴에 새겨 두면서 살려고 한다. 그 절묘한 순간들담긴 신의 호의에 감사하고 내 인생이 버림받지 않았음을 스스로 상기하위해서이다. 어차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었 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물과 물처럼 인생의 모래사장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다. 썰물에 밀려 넘어지려 하면 밀물이 들어와 세워줬고 풍이 불어 휘청거리면 풍이 불어와  밀어격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고꾸라지지 않고 살게끔 만드는 것이다.


삶에 적절히 균형을 맞춰주는 행불행 덕분에 우리는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눈물콧물 범벅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때로는 기적 같은 행운이 때로는 저주 같은 불행이 오겠지만 내가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인생은 알 수 없기에 섣불리 희망할 것도 성급히 절망할 것도 없다.


인생이 기대하지않았던 선물을 우리에게 덥석 안겨 줄 때도 있기에 여전히 희망은 있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준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빠 죽기도 힘들고 좋아 죽기도 힘들 만큼 딱 그만큼의 상태로 인생은 내 소관이 아니게 흘러가는 것이다. 물론 나의 노력이나 의지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나의 힘알 수 없는 커다란 힘 함께 더해져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든지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불과 2년 전, 나는 블로거도 브런치작가도 아니었고 이 도시에서 살지도 않았다. 내가 지은 집을 팔게 될 줄도 몰랐고 무엇보다 남편과 둘 다 휴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의 삶을 내가   만든 걸까?


이렇든 저렇든 어떠한가.

나는 현재에 만족한다.

어차피,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출처 무아




이전 03화 만약, 내가 로또에 당첨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