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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r 07. 2024

무심코, 글을 쓰고 있다.

'무심코' 다른 이를 아프게 할 말도 행동도 하지 않겠다.

무심코

 -아무런 뜻이나 생각이 없이


 부사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하루는 남편과 아들에게 물었다. 뭐 떠오르는 부사 없어? 나한테 부사 좀 줘 봐. 그러자 아들이 무심히  던져준 부사가 있었다.  초 2 아이 입에서 나온 부사라기에는 너무나 심오하게 느껴지는 말. 그건 바로 '무심코'였다. 나는 순간 가슴속에 박하사탕가루가 녹아든 듯 시원함을 느꼈다. 그 부사가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무심코'를 가슴에 품은 채 꽤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상하게도 '무심코'에 대해 쓰는  엄두가 나질 않아서였다.


 묵은 숙제를 끝내려는 마음으로 기억접어 넣어둔 '무심코'꺼내 펼쳐보았. 무심코가 그토록 어렵게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나는 가만히 있을 때조차도 머릿속으로 여러 개의 트랙과 목적지를 그려두고  없이 뜀박질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사는 동안  '무심코' 하는 일들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무심코'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무심코 저지르는 행동이나 무심코 내뱉은 말에 상처받은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심코'를 욕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이 어찌 언제나 무심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무심코'는 팍팍하고 숨 막히는 삶에 작은 바늘구멍 같은 순간이 아닐까? 누구라도 무심코 창밖을 바라볼 수 있고 무심코 거리를 걸을 수도 있으며 무심코 무슨 말인가를 해버릴 수도 있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

 무심코, 글을 쓰고 있다.




  무심(無心)은 감정이나 생각하는 마음이 없음 또는 속세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경지를 뜻하는 명사이다. 이 명사에 '~코'가 붙어 그러한 상태로 무언가를 할 때를 뜻하는 부사 '무심코'가 되었다. 오랜 세월 도를 닦은 이들이 이른 경지 같기도 한 이 말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다. 흔들림이 없는 득도의 상태를 뜻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있다는 뜻으로 쓰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아무 생각도 마음도 감정도 없는 상태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내면에 아무것도 없다기보다는 무언가는 있으되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 마음이나 생각을 나도 모르는 가운데 그저 흘러가는 대로 말하거나 행동하고 있을 때, 우리는 '무심코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에 누군가는 놀라고 상처받는 일이 생기기도 하니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부사 이야기에서도 거듭 말했지만, 같은 말이라도 나에 대한 것과 남에 대한 것이 다른 법이다. '무심코'도 마찬가지이다. 나 자신에게는 '무심코'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눈을 떠서 지금까지 내 곁을 스쳐간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았고 창틀에 맺힌 빗방울에 눈길이 잠시 머물렀었다. 봄비가 내리는 하늘이 너무 무겁고 어두워서 겨울과 차마 헤어지지 못하는 봄이 애처로웠. 거실 테이블에 앉아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았고 오늘따라 온화하게 웃고 있는 성모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성모상의 위치가 10도 정도 틀어져 있음을 발견했으나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고 나서 평소처럼 노트북을 켰고 나는 '무심코'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모든 게 불안할 정도로, 완벽하게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이러한 '무심코'인 순간들이 나의 의지나 마음, 생각들과 만나 톱니바퀴처럼 뒤엉켜 굴러가면서 하루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무심코'인 순간은 4분의 4박자 셈여림표인 '강약중강약' 중 '약'에 해당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향해 미친 듯 달려가다가 한 번씩 쉬어가는 순간들.  삶의 진실을 환기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율해 주고 마음의 세기를 조절해 주는 순간들. 거기에 '무심코'인 순간들이 있는 게 아닐까?


 다만 '무심코' 행하는 말이나 행동이 타인을 향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악의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이었다고 변명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미 큰 상처를 은 사람은 그 '무심코'를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렵다. 음주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선 한때 술에 취해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해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리고 그것을 다 술의 탓으로 돌리며 면죄부를 쥐어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더 이상 술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는 못하게 되어버렸다. 통쾌하게도!  그렇다면 '무심코'는 어떠한가? 술도 마시지 않은 제정신인 상태에서 '무심코' 하는 말이나 행동에 면죄부를 줄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불쌍한  아버지는 말 한마디 때문에 평생토록 외동딸에게 미움을 받았다. 그날 '무심코' 던진 아버지의 한마디에 어린 내 영혼은  새까만 재로 녹아버리고 말았다. "네가 공부라도 못했으면 너를 키웠을 거 같아? 고아원에 갖다 버리고 말았지." 그 말이 커다란 쇠말뚝이 되어 가슴에 박혔고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것은 빠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말은 아버지의 술주정이었거나 '무심코' 내뱉은 말실수였다는 것을. 아버지는 나를 사랑했고 나를 정말로 버리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러한 진실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그런 말을 내뱉은 아버지를 증오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물어볼 수는 없지만 백 퍼센트 확신하건대 아버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무심코'는 무척이나 조심해야만 한다.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평생 동안 아파할 수도 있을 테니까.  끔찍한 죄인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 우리는 악의를 품고 한 욕이나 험담만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심코' 내뱉는 말이나 행동을 그보다 더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나 생각이 무방비인 상태에서 하는 말이나 행동이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양날의 검 같은 '무심코'. 생각보다 무심해지기 어려운 말이라서 오랫동안 글쓰기가 두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무심코 시작한 글쓰기에서  '무심코'를 새롭게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들의 기억 속엔 어떤 '무심코'에 얽힌 상처가 새겨져 있을지 두렵다. 아들이 나에게 이 부사를 건네준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무심코' 누군가를 아프게 할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해 본다. 가능할진 모르지만...


 오늘도 나는 이렇게

 무심코, 글을 쓰고 있다.  

 강약중강약 박자를 맞추며...


#무심코

#부사

#공감에세이

#생각

#마음

#무심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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