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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r 21. 2024

또다시, 모든 것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또다시

 - 거듭하여 다시

 - ‘다시’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


 요즘 문득 대학 시절의 내가 선연히 떠오르곤 한다.  나는 학기 중엔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속에 파묻혀 지내다가도 방학만 되면 집으로 돌아와 긴 칩거에 들어가곤 했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니 사람들과의 단절에 그다지 큰 노력이 들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으면 되었고 혹시라도 집으로 오는 전화는 받지 않으면 그뿐이니까. 쉽고도 가벼운 고립이었다. 자초한 고독 속에서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 틀어박혀 지냈다. 소설 단지 소설만을 안고 끼고 핥던 시절이었다. 소설은 분명한 허구의 세계였지만 나는 거기에 내 영혼의 한 조각이라도 뿌리내리고 싶었고 그런 부질없는 갈망은 끝내 배반당하고 말았다. 결국엔 현실의 나로부터.


 마흔을 넘기는 긴 시간 동안 나는 소설을 버렸었다. 아니 소설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나란 사람은 늘 여기 아니면 저기를 오갈 뿐 중간 지점에 서 있는 약삭빠름이란 없었으니까. 내겐 직업이 있었고 남편이 있었고 아이가 있었다. 이렇게 뚜렷한 물성이 있는 삶 속에 소설이 감히 발을 들여놓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칫 무모한 내가 소설의 손을 잡고 쓸데없는 가출이나 위험한 도피를 감행하게 될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한 작가의 소설들을 사냥개처럼 찾아내어 물고 뜯다가 문득, 20여 년 전 내가 되살아나 있음을 느끼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토록 두렵고 버리고 싶어 했던 내가 어쩌면 내 안에 그대로 살아 있었을까? 소설도 시도 읽지 않으면서 마침내 말려 죽이려고 했던 내가 그 오랜 세월을 버티고 버티었다가 다시 되살아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나는

 또다시, 모든 것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불길함이 화염처럼 성큼 덮쳐왔다.




 20대 무렵 혼자서 소설이란 걸 끄적인 적은 있었다. 어디 내놓기에도 부끄럽고 혼자서 읽기엔 더더욱 끔찍해서 쓰고 지우고 쓰고 지워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쓰지 않았다. 그저 읽고 또 읽으며 마구잡이로 소설을 삼키기만 했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닮은 듯하면서도 많이 달라져 있다. 나는 이제 읽되 함몰되지 않으며, 쓰되 도망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낯빛이 허옇고 눈매가 사나웠던 젊은 시절의 나는, 흐릿해진 모습으로 내 안에 남아 있는 과거의 허물어진 그림자일 뿐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조금 안도했다.


 하지만 인생은 무섭게 반복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동정하던 엄마의 팔자를 닮아가는 딸. 증오하던 아빠와 판박이가 되어가는 아들. 벗어나고 싶던 아빠와 왠지 모르게 비슷한 남자와 사는 딸. 끔찍했던 엄마를 빼다 박은 여자와 사는 아들.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그대로 대물림하는 자식. 헤어진 연인과 똑같은 사람을 만나 또다시 고통스러워하는 여자 혹은 남자. 도망친 곳으로 끊임없이 되돌아와 서 있는 무기력한 자아. 빠졌던 우물에 다시 빠져 허우적거리다 무겁게 가라앉 영혼. 20대의 나를 50대 언저리에서 '다시' 만나 소름 끼쳐하고 있는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달라진 것있을 것이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와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 누구도 인생을 똑같이 반복하지는 않는다 절대로. 다만 걷잡을 수 없이 두려워질 때가 있다. 떨쳐냈던 불안이 온몸의 솜털이 일어나듯 낱낱이 되살아나는 순간들이 있다. '또다시, 모든 것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내 앞에 그럴듯한 근거를 들이대비열하게 조소할 때가 있다. 그리하여 내가 또 모든 걸 버리거나 도망치거나 절망하고 몸부림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


 하지만 나는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나는 다르게 행동하리라는 걸 믿는. '또다시'라는 부사는 우리를 단단히 옭아매는 불가역덫 같지만, 과감히 벗어던지고 새롭게 혹은 다르게 시작해야만 한다. 20대의 내가 불안과 절망에 취한 모습으웅크리고 있다 하더라 내밀어 일으켜 세운 뒤 함께 걸어갈 것이다. 지금의 내가 반 걸음 정도 앞장서서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노려보는 젊은 나에게 말해 줄 것이다. '조금 절뚝거리더라도 괜찮아. 그냥 따라와. 나를 믿고.' 나는 이제 앞만 보고 걸을 것이다. '또다시' 길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나를 맡겨버리지않겠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혹은 반복하고 싶지 않은 인생의 블랙홀 같은 순간들이 있는가? 그런데도 이따금 소름 끼치게 '또다시' 자신이 같은 자리에 서있는 것만 같은 무기력한 찰나들이 있는가? 하지만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와 분명히 다르다. 지나온 세월은 낮과 밤처럼 혹은 하늘과 바다처럼 맞닿을 순 있으나 결코 하나가 될  없고 뒤섞일 수도 바뀔 수도 없는 것이다. 그동안 걸어온 만큼 나는 멀어져 있고 달라져 있다. 그러니 얼굴을 뒤덮은 불안의 장막을 이제는 걷어 버리자.


또다시, 모든 것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이미 이만큼 달라져 있으니까.


 

출처 사진작가 김연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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