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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r 14. 2024

그럭저럭, 잘 지내나요?

끝내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럭저럭

 -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로.

 - 그렇게 저렇게 하는 사이에 어느덧.  


 누군가 안부를 물을 때 열이면 아홉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럭저럭 잘 지내. 너는?" 그러면 상대도 열에 아홉은 똑같이 맞받아친다. "나도 그럭저럭 지내지. 뭐." 우리는 서로의 '그럭저럭'에 안도하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그럭저럭'은 별일 없이 잘 살고 있음과 동의어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하나뿐인 인생을 '그럭저럭' 적당히 살아간다는 건 조금 허무하지 않나요? 이슬아 작가는 임종 직전에도 '정말이지 끝내주는 인생이었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뜨뜻미지근하지 말고 좀 더 열정적으로 살아 보는 게 어때요?


 끝내주는 인생이란 '그럭저럭' 살아가는 인생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럭저럭'이 편안하고 부담 없어서 좋다. 나란 사람은 애초에 끝내주는 게 뭔지 잘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미치도록 좋은 것이나 죽도록 행복한 것을 갈망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럭저럭' 좋거나 '그럭저럭' 행복한 상태에 머무르고 싶다. 마찬가지로 '그럭저럭' 싫거나 '그럭저럭' 고통스러운 상태 역시 충분히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당신은 어떤가요?

 끝내주게 살고 있나요?

 그럭저럭, 잘 지내나요?   



 삶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되새김질하게 된 것은 어른이 된 이후였다. 어린 시절엔 행복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하루를 보냈고 밤이 오면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날이 되면 세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새로웠고 앞으로의 삶은 길고도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죽도록 고통스럽진 않았고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반대로 진짜로 좋은 것이 있어도 그것이 정말로 귀하고 행복한 일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니 매사에 안달복달할 필요가 없었다. 어린아이의 단순함이란 어쩌면 신이 주신 최고의 축복이 아닐까?


 어린 시절 폐병을 앓았을 때 병원에서는 기침을 하다 피를 토하그땐 죽게 될 수도 있다경고했다. 정말이지 숨이 넘어가게 기침을 해댈 때면 이따금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나는 그 저주 같은 예언에 별다른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 죽음이 그다지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만약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까지 미리 고통스러워하면서 불행을 한탄하느라 하루하루를 시름 속에서 보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엔 모든 게 '그럭저럭' 흘러가는 듯했고 내가 시궁창에 빠져 있는지 꽃잎 위에 앉아 있는지 판단하려 들지 않았다. 슬프면 울었고 기쁘면 웃었고 졸리면 잠들었고 배고프면 먹었다. '그럭저럭' 보냈던 단순한 시간들이 흐르고 흘러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인생이 지나치게 중요해졌고 행복은 어려워졌고 꿈은 멀어졌다. '그럭저럭' 사는 게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아 안절부절못했다. 열정으로 들끓던, 젊은 시절의 나는 이슬아 작가처럼 '끝내주는 인생'을 살고 싶어 했다.  '자극적일 정도로 충만한 인생'만이 진짜 인생인 것 같았다. 죽도록 좋거나 미치도록 행복한 것이 어딘가에 분명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사는 게 생각보다 무척 단순하다는 것을.  이제는 점점 담백했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럭저럭'이 더없이 편안하고 좋게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쓴맛을 맛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어쩌면 끝내주는 인생보다 어려운 게 평범한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아무리 끝내주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두려움이나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그것을 기 위해 낭떠러지 아래뛰어내리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냥 이 자리에서 오늘도 '그럭저럭' 하루를 잘 살아냈음에 감사할 뿐이다.


 여러 번의 넘어짐과 일어남 뒤에 배운 것은 결국 '그럭저럭' 사는 것의 소중함과 위대함이 아닐까? 그걸 알기에  웃으면서 '그럭저럭 잘 지내.'라고 안부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보다 더 늙어버린, '그럭저럭' 사는 것의 미덕을 알 것만 같은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몸은 좀 어때?"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그래, 그럼 됐지 뭐."


 나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그리운 친구에게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럭저럭, 잘 지내.'라는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봄이 되었으면 한다. 별일 없다는 거 그게 '끝내주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봄이 '그럭저럭' 우리 곁을 미풍처럼 지나가길....


 당신은 어떤가요?

 끝내주게 살고 있나요?

 그럭저럭, 잘 지내나요?   

   

출처  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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