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위 Mar 04. 2024

내 모든 것은 '눈물꽃 소년'에게서 시작되었다.

박노해 시인의 어린 날 이야기

 나는 박노해 시인을 존경하고 그의 시도 좋아한다. 특히 그의 올곧음과 순정함을 사랑한다. 사진 에세이나 시집을 주로 발표해 던 시인이 이번에 펴낸 책은 '눈물꽃 소년'이란 자전수필이다. 박노해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니 안 읽을 수가 없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든 책에는 박노해(본명 박기평)의 소년 시대 이야기들이 꾹꾹 눌러쓴 편지처럼 정성스럽게 담겨 있었다. 


 박노해 시인이 직접 그린 연필그림들도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었다. 단순하고 간결한 그림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을 울렸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추운 겨울 난로 앞에서 꽁꽁 언 몸을 녹이는  훈훈다. 영혼이 따뜻하게 데워지면서 얼굴에 박혀 있던 얼음꽃이 스르르 녹아 눈물꽃으로 새롭게 피어나는 걸 느꼈다.


눈물꽃 소년 – Daum 검색

출처  racafe gallery 인스타그램


 왜 슬픔은 아름답고 작은 것들이 고귀한지, 올바름은 언제나 빛이 나고 용기는 위대한 것인지, 보잘것없는 가운데 진실이 솟구치며 고통 속에 참됨이 피어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 소년 박기평이 어떻게 해서 박노해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단박에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마을 어르신들, 선생님과 동무들, 첫사랑 소녀까지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랑과 가르침, 배려로 그의 영혼을 환하게 밝혀 주었기 때문이.


 그토록 아름다운 어린 시절이라니 질투가 날 정도였다. 물론 아버지를 일찍 여위었고 가난했으며 한때는 아이들의 따돌림을 받기도 하는 슬픈 날들도 많았지만, 그의 곁에는 항상 등불 같은 들이 존재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눈물의 씨앗을 품고 자라났기에 그는 '눈물꽃'으로 피어나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위무할 수 된 게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평이를 품어주었만 그중에서도 가장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는 존재는 '할머니와 어머니'였다. 험난한 세상살이 속에서도 곧고 넓고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나간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의  속에서 평이는 강인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


 "새들도 묵어야 사니께 곡식은 좀 남겨두는 거란다. 갯벌에 꼬막도 저수지에 새뱅이도 씨 마를까 남겨두는 거제이. 머루도 개암도 산짐승들 먹게 남겨두는 거고. 동네 잔치 음식도 길손들 먹고 동냥치도 먹게 남겨두는 것이제. 아깝고 좋은 것일수록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할 말 다 하고 사는 거 아니란다. 억울함도 분함도 좀 남겨두는 거제. 잘한 일도 선한 일도 다 인정받길 바라믄 안 되제. 하늘이 하실 일도 남겨두는 것이제. 하늘은 말없이 다 지켜보고 계시니께."

"알사탕같이 최고로 달고 맛난 것만 입에 달고 살면은 세상의 소소하고 귀한 것들이 다 멀어져 불고, 네 몸이 상하고 무디어져 분단다. 그리하믄 사는 맛과 얼이 흐려져 사람 베리게 되는 것이제."

 "눈이 총총할 때 좋은 것 많이 담고 좋은 책 많이 읽고, 몸이 푸를 때 힘쓰고 좋은 일을 해야 하는 거제이. 손발 좀 아낀다고 금손 되겄냐 옥손 되겄냐. 좋을 때 안 쓰면 사람 베린다. 도움 주는 일 미루지 말고 있을 때 나눠야 쓴다잉. 다 덕분에, 덕분에 살아가는 것인께."


 할머니가 하시말씀마다 나는 놀라고 탄복했다. 속 깊은 지혜와 넓디넓은 사랑을 지닌 분이 하시는 '참말' 덕분에 평이는 늘 배우고 깨달으며 자랐겠구나 싶어 부럽기도 했다. 시인 역시 자기를 키워낸 주변인들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고백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나를 알게 모르게 북돋아 주고 꺾인 날개를 되살려 주던 말 없는 배려와 보살핌의 마음들. 덕분에, 덕분에, 더 정하고 더 올곧고 더 힘차게 자라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어머니는 고단한 삶을 꾸려나가면서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여인이었다. 시인은 어머니의 소리 없는 인내와 헌신, 눈물의 기도 속에서 자라났.

 "울 엄니와 나는 '좋은 부모'도 '좋은 자식'도 아니었다. 그저 말없이 곁을 지키며 함께했고 서로를 향해 눈물의 기도를 바쳐줄 뿐이었다. 어머니가 내게 좋은 자식이 되어주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나는 나 자신이 되고 나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었다."


출처 눈물꽃 소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약간의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훌륭한 사람들의 사랑과 가르침 속에서 자라난 사람만이 박노해와 같이 올곧고 강인어른이 있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말로 나에게  날카로운 일침을 가했. 

 '경험하는 나기억하는 나는 다르다. 기억은 또 해석과 표현에서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품고 오늘 여기에서 진실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과거는 모두 흐릿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흔적일 뿐이며,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 의해 해석되고 표현되는 것일 뿐이다. 그럼 나를 키워온 모든 존재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은 지금을 사는 나의 몫일지도 모른다. 나의 과거가 어떠하든 나는 스스로를 '눈물꽃 소녀'라고 생각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어린 평이는 시를 쓰면서 언젠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꿈꿨다. 어두운 날들 속에서자기를 지지해 주는 사람은 꼭 있었고 그런 이들의 사랑이 빛이 되어  꿈을 이루어 나갈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에는 과거에 대한, 현재 박노해의 긍정과 애정이  담겨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 고통보단 아름다움을, 비극보단 희극을 보물처럼 찾아내려 한 시인의 고운 마음 있었던 것이다.


 나도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해주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스스로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과거와 과거 속 사람들에게   큰 사랑과 감사를 품어야 하지 않을까? 또 그들 가운데 나를 살려내미약한 영혼을 환하게 밝혀 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었음기억해야 할 것이.


 과거를 증오하거나 희망을 잃어버린 모든 이들에게 시인의 따뜻한 당부의 말을 대신 전한다.

 "힘든 거 알아. 나도 많이 울었어. 하지만 너에겐 누구도 갖지 못한 미지의 날들이 있고 여정의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어. 그 눈물이 꽃이 되고 그 눈빛이 길이 될 거야."


우리는 모두 눈물꽃이 될 수 있다.


출처  racafe gallery 인스타그램

#박노해

#첫 자전수필

#라카페 갤러리

#눈물꽃 소년

#박기평

#어린 시절



 

매거진의 이전글 'H마트에서 울다'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