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아빠의 영혼은 그날 밤처럼 차가운 바닷속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죽어선 안 되었다. 아빠에게 무슨 말이라도 들어야만 했다. 심장이 멎을 정도로 시린 겨울 바다에 몸을 던질 만큼 아빠의 삶도 이미 망가져 버렸다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 게 다 이해되고 용서되는 건 아니었다. 이제라도 알아야 했다. 그때는 왜 떠났고 지금은 왜 죽으려고 하는지를. 의사는 말했다. 아빠는 바다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어차피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환자라고. 그렇다면 더더욱 의문이었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왜 차디찬 바다에 수장되려 했던 것일까? 보잘것없고 환멸 가득한 생에서 적어도 마지막만큼은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는 낭만적인 바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지독할 정도로 허무한 생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퇴폐적인 자기 파괴적 욕망 때문이었을까?
며칠 뒤 아빠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연락이 왔다. 너와 재이는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아빠는 이미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내려와 있었다. 미동도 없이 돌아누운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재이가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어르신, 잠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재이의 목소리에 아빠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서 당장 뛰쳐나가 버리고 싶었지만, 입술을 꽉 깨물며 아빠를 향해 꼿꼿이 고개를 쳐들었다. 주먹을 움켜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손바닥 사이에선 끈적한 땀이 배어 나왔다. 아빠의 눈동자가 탁류처럼 흐려지더니 이내 캄캄하게 닫혔다. 아빠는 말없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멍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였구나. 내 딸, 영이. 꿈인지 생시인지 내내 헷갈렸다. 그날 영원도에서 보았던 사람이 네가 맞는지.”
“저였어요. 근데 한겨울에 바닷물에는 왜 들어갔던 거예요? 정말로 죽으려고 했던 거예요?”
너는 다짜고짜 따지듯 물었다. 가슴속에는 해야 할 말들이 차고 넘쳐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그 한마디뿐이었다. 왜 죽으려고 했냐는 분노에 가득 찬 물음. 아빠는 눈가를 잠깐 찡그리더니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너는 그런 아빠에게로 덤비듯 한 걸음 성큼 다가갔다. 왜 이제야. 왜 이렇게. 왜. 왜..... 목 언저리께가 콱 막혀서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마음속으로만 짐승처럼 울부짖을 뿐이었다.
‘왜 그랬어. 왜 그랬어. 도대체 왜!’
목을 조르는 듯한 통증에 숨도 잘 쉬어지질 않았다. 억지로 마른침을 한 번 꾹 삼키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절대로 울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서둘러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아빠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아빠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볼 자신도 없었다. 너의 마음을 한꺼번에 속수무책으로 들켜버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사방이 꽉 막힌 벽 속에 갇힌 듯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살아온 지난날들이 억울했다. 한 남자만 바라보다 일생을 저당 잡힌 엄마 역시 가엾고 초라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눈앞에 있는, 다 죽어가는 늙은 남자가 죽이고 싶도록 미운 것도 아니었다. 이도 저도 아닌 감정의 풍랑에 휩쓸려 토할 것처럼 멀미가 났다.
“언젠가 너를 만나게 될 줄은 알았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릴 찾아오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만나요? 오빠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기나 해요? 그리고 엄마는요.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 못 하면서도 여전히 아빠만은 잊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고요.”
“알고 있다. 너한테 정말 미안하구나. 내가 죄인이다.”
“무슨 말이에요? 알고 있다니. 우릴 지켜보고 있으면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나는 엄마와 너에게 돌아갈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빠가 그렇게 된 걸 알았으면 무조건 돌아왔어야죠. 와서 엄마와 내 곁에 있어 줬어야죠.”
“그때 그런 일이 생기지만 않았더라면…….”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오늘은 그만 얘기하자. 많이 힘들구나. 나중에. 나중에 다 얘기하마.”
아빠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서는 눈을 감아 버렸다. 몸 상태가 극도로 안 좋다는 것을 알기에 더는 대화를 강요할 수는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실을 돌아 나왔다. 재이는 말없이 너의 곁을 따라 걸었다. 이제야 오랜 세월 침묵으로 멍들어 있던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병원 밖 정원에는 아직은 희미한 봄의 기운을 좇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벤치에 앉아 졸음에 겨운 게슴츠레한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게 다였지만__ 너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봄이 오려나 봐. 마침내…….”.
재이는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아빠는 왜 재이에게 다른 사람인 척을 했을까?”
“저도 그 점을 고민해 봤는데요. 아무래도 여자분을 꼭 만나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여자가 찾으려고 했던 남자는 어떻게 된 걸까? 어디에 있는 걸까? 아빠는 그 남자에 대해 알고 있을까?
“아마도 알고 계시지 않을까요?”
이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두 남녀. 그들은 말하지 않은 것들과 말할 수 없는 것들 사이의 어디쯤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그 길을 찾아 두 사람을 진실의 문 앞으로 데리고 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빠뿐이었다. 세 사람이 찾으려 한 파랑새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사랑을 잃어버리고 고통스러워했지만, 정작 잃어버린 건 자기 자신이었던 게 아닐까. 너 역시 정말로 무언가를 잃어버린 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찾아야 할 것도 없었던 거였다. 단지 아주 오랜 시간 너에게서 나와 길을 잃고 헤매다 이제야 너에게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을 뿐. 틸틸과 미틸이 찾아 떠난 행복의 ‘파랑새’는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멀리 달아나 버리기만 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언제나 곁에 있지 않았던가? ‘파랑새’는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에 있다. 그래서 파랑새를 찾아다니는 방랑자들은 영원히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헤매기만 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에선가 피피피~~ 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이미 잊혔거나 사라져 버린 이름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것 같았다. 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재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뭘 찾아요?”
“아니야, 찾는 게 아니야. 이제 더는 그럴 필요도 없고.”
며칠 후 병원에 다시 갔을 때, 아빠는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그다지 놀라지도 슬프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결국엔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이상한 확신 같은 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편지 한 장을 남겨 두고 떠났다. 파랑새란 희곡집에서 발견했던 얼룩진 편지와 비교해 보니 필적이 똑같았다.
영아.
너의 이름을 살아서 다시 부르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나를 찾아와 줘서 고맙다. 너에겐 한없이 부족하고 못나기만 한 아빠였는데……. 너와 엄마에게 돌아가지 못했던 건 한 사람의 목숨에 빚을 졌기 때문이었다. 내게 가장 소중했던 친구, 승일이. 살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원이마저 그렇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더이상 살아갈 가치도, 의미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너와 엄마가 미치도록 그리웠지만 두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건 너무도 이기적인 일이었다. 평생을 승일이와 원이에게 사죄하며 살았다. 아무런 행복도 누리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지. 나를 벌하기 위해 선택한 삶 역시 지독히 이기적일 뿐이었다는 것을. 영아, 나는 돌이킬 수 없이 많은 잘못들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병원에서 이미 들었겠지만 내겐 남은 생이 얼마 없다. 죄 많은 목숨을 누구에게도 빚지고 싶지 않구나. 특히 너에게만은. 아빠가 아빠여서 정말로 미안했다.
하지만 너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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