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돈 워리 07화

돈 워리

소위의 토요 초단편 소설 7

by 소위 김하진

명희는 밤이 되어야 외출할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복어처럼 울퉁불퉁했고 몸에는 울긋불긋한 멍게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몸의 한 부분을 누르면 푹 들어갈 듯 곪아 있었다. 욕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한마디로 기괴했다. 예술인지 외설인지 헷갈리는, 행위예술가의 작품 같기도 했다. 자신의 벗은 몸을 보고 있노라면 구역질이 났다. 검은색 롱코트로 몸을 가리고 벙거지까지 깊이 눌러쓴 채 집을 나섰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그믐인지 하늘이 어둑하고 부옜다. 집 근처에 있는 오래된 폐역으로 향했다. 그녀에겐 거기가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였다. 이따금 낯선 얼굴들과 부딪히기도 했지만, 유령처럼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척해 주었다. 어둠을 파고드는 족속들끼리의 보이지 않는 약속 같은 것이었다. 그중엔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여자도 있었다. 명희는 그녀의 가시처럼 가는 실루엣을 멀리서 훔쳐보곤 했다. 워리가 킁킁거리며 달맞이꽃밭 속으로 기어들어 가려했다.

“안돼, 이리 와.”

그녀는 목줄을 바투 쥐었다. 워리는 잡종견이었다. 하지만 영리하고 순종적인 게 혈통 좋은 사냥개의 후손임이 틀림없었다. 밤길을 나설 때면 항상 워리를 앞세웠다. 심야 산책에 맛을 들였는지 밤중에 그녀를 보면 유난히 꼬리를 세게 흔들었다. 워리와 함께 있으면 저승사자가 눈앞에 나타나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저주받은 존재 간의 동지애 같은 게 느껴졌다. 워리는 유기견보호센터에서 데려온 아이였다. 영양 부족으로 온몸의 털이 뭉텅이로 빠져 있었다. 여기저기 폭력의 흔적들도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자꾸만 빛이 없는 공간 속으로 파고들었고 머리를 숨기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워리를 만나자마자 집으로 데려왔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에서 ‘돈 워리’라는 이름도 붙여 주었다.


“아우, 무슨 개똥 냄새가 이렇게 지독해?”

사내들은 노크도 없이 대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왔다. 뱀과 용이 시퍼런 회오리를 그리며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개중에는 앳되어 보이는 얼굴도 섞여 있었다. 막 권투장에서 돌아와 샤워 중이던 명희는 물기도 제대로 닦지 못한 채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나왔다.

“어이, 아줌마! 이 새끼 어디 갔어?”

“며칠 전에 나가서 아직 안 들어왔어요.”

“우리가 한 말 기억하지? 그 새끼 집에 오면 당장 연락하라고 한 거 말이야! 안 그랬다간 아줌마가 우리한테 죽을 줄 알아. 알았어? 이 새끼가 떼 간 돈이 얼만지 알기나 해?”

“네, 알았어요. 꼭 연락할 테니까 오늘은 그만 가세요.”

하지만 사내들은 그녀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집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신발도 벗지 않은 였다. 안방부터 화장실까지 주머니를 뒤집어 훑듯 뒤지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서도 바닥에다 연신 가래침을 뱉어 댔다.

“뭔 똥 냄새가 이렇게 지독해? 숨도 못 쉬겠네. 에이 씨발. 퉤 퉤 퉤.”

그녀는 남자들이 나간 후 서둘러 대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는 마당을 깊이 파서 워리의 똥을 묻어 버렸다. 워리는 유독 고기를 좋아했다. 어릴 때 배곯이를 오래 해서였다. 음식을 보면 늘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신발을 던져 줘도 씹어먹을 기세였다.


그녀가 권투장에 다니기 시작한 건 삼 개월 전부터였다. 집 앞 사거리에 새로운 권투장이 문을 열면서 커다란 현수막 하나가 붙었다.

‘오픈 기념 파격 행사, 6개월 비용으로 1년을 책임집니다.’

무엇을 책임지겠다는 것일까? 그녀는 홀린 듯 권투장 안으로 들어가 1년 치 교습을 등록해 버렸다. 비상금으로 모아 둔 돈 전부를 털어 넣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남편을 흠씬 두들겨 패주어야 속이 후련할 거 같았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수련생이 많지 않았다. 막 은퇴한 권투 선수 출신의 코치는 꽤나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그녀는 수업 시간이 끝나도 혼자 남아 샌드백에 주먹을 휘둘렀다. 밤이 되면 폐역에서 숨이 끊어질 정도로 달리고 또 달렸다. 인간이란 얼마나 주도면밀한가. 겉으론 나약하고 무능한 피해자인 척하면서도 무의식 속에서 철저히 복수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언제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를 몰랐을 뿐.


* 나머지 내용은 아래 링크한 '밀리의 서재' 에서 읽어 주세요. 이 단편집은 밀리의 서재 창작 지원 프로젝트에 당선되어 일부 비공개 처리하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소설이 마음에 드신다면 '밀리의 서재'에서 좋아요와 댓글, 밀어주기 부탁드립니다!


https://short.millie.co.kr/qsp04e


* 대표 이미지는 파블로 피카소의 Femme au Chien(영어: Woman with dog)입니다.



소위의 첫 에세이가 2025년 5월 30일 출간되었고 2025년 7월 21일 2쇄가 발행되었습니다.

3쇄의 기적을 이룰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627537?LINK=NVB&NaPm=ct%3Dmg0ba3zs%7Cci%3D1d37b8035fdffc2bbe631bb7a58646c51a51d30d%7Ctr%3Dboksl1%7Csn%3D5342564%7Chk%3D61ca47952defc31bb0f767a7b31a21e0c377b670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6928231

#초단편소설 #손바닥소설 #돈워리 #가정폭력 #복수 #에세이추천 #부사가없는삶은없다 #소위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