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돈 워리 06화

달맞이꽃

소위의 토요 초단편 소설 6

by 소위 김하진

노란 꽃 무더기가 먼발치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다가가 보니 달맞이꽃이었다. 기어이 주변을 환하게 밝히기로 작정한 듯 빛을 내뿜고 있었다. 밤이 되어야만 피는 달맞이꽃처럼 미주도 밤을 기다렸다. 도시 외곽에는 오래된 폐역이 있었다. 버려진 공간답게 늘 어두컴컴했다. 가로등도 드문드문 나가 있어서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미주는 그곳을 좋아했다. 축축한 어둠 사이로 계절마다 다른 냄새가 풍겨 나왔다. 여름이면 강렬한 향이 콧속을 얼얼하게 마비시켰다. 꽃과 곤충들의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이 된 듯했다. 폐역에 있으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아서 좋았다. 그림자가 되어 어둠 속을 거닐다 보면 머릿속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달맞이꽃밭 속으로 희끄무레한 것이 보였다. 누가 버리고 간 인형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규칙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쪼그라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제대로 불지를 못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풍선처럼. 그녀는 다리에 힘을 주면서 허리를 잔뜩 굽혔다. 순간 아! 하는 탄식이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분명했다. 그것은 기다렸다는 듯이 신음 같은 울음을 토해냈다. 달맞이꽃밭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덩어리의 정체는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고양이였다. 코앞까지 다가갔지만 도망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순간 얼룩덜룩한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 주변으로 핏물이 흥건했다.


한 가지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구해줘야 해.

“임신한 고양이 같은데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구급대원 한 명이 도착했다. 케이지와 포획망을 들고 짐짓 비장한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고양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는 능숙하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고양이를 케이지 안에 집어넣었다. 동물을 많이 다루어 본 솜씨였다. 어느새 그의 장갑과 옷에도 새빨간 얼룩이 번져 있었다.

“이 아이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일단 제가 병원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살아난다 해도 보호소에 있다가 결국……. 어떻게 될진 이미 아시지 않나요?”

“따라가도 될까요?”

“네?”

“오늘만 고양이 곁에 있어 주고 싶어서요. 아까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거든요. 제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듯했어요. 혹시라도 오늘 밤 죽게 된다면 제가 장례를 치러주고 싶어요.”

“이런 걸 부탁하는 분은 없었지만, 구조자분 눈빛이 간절해 보이네요.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미주는 밤이 되면 밖으로 나갔다. 때로는 밤새 걷기만 할 때도 있었다. 마땅히 만날 친구도 없었다. 그와 만나기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 모두와 연락을 끊어 버렸다. 언니는 그녀가 밤새 술 마시고 노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오해했다. 하지만 굳이 진실을 밝히고 싶진 않았다. 낮과 밤이 뒤바뀌어 버린 삶이 그녀에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그녀를 잘 나가는 모델이라고 알고 있었다. 적어도 언니만은 계속해서 그렇게 믿어주길 바랐다. 그 거짓말만이 유일하게 그녀를 살게 하는 힘이었으니까.


모델은 어려서부터의 꿈이었다. 처음 아동복 광고 사진을 찍었을 때 아빠는 사람들을 붙잡고 들뜬 목소리로 떠들었다.

“이 아이가 제 딸이에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이 될 아이라고요.”

하지만 첫 무대에 오르던 날, 그녀를 보러 와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빠는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었다. 빛을 잃고 암흑 속에 누워만 있었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난파선이 된 것 같았다. 길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아빠를 보는 게 고통스러워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병문안도 가지 않았다.


* 나머지 내용은 아래 링크한 '밀리의 서재' 에서 읽어 주세요. 이 단편집은 밀리의 서재 창작 지원 프로젝트에 당선되어 일부 비공개 처리하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소설이 마음에 드신다면 '밀리의 서재'에서 좋아요와 댓글, 밀어주기 부탁드립니다!


https://short.millie.co.kr/wj7h2b



이번 화에선 가슴이 따뜻해지는 잔잔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은 이른 아침 작가님의 글 달맞이꽃, 기다림 끝의 한 순간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 대표 이미지는 Mary Vaux Walcott의 Evening Primrose (Oenothera lavandalaefolia)입니다.



2025. 5. 30. 저의 첫 에세이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를 출간했습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627537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6928231


#달맞이꽃 #초단편소설 #손바닥소설 #고양이 #사랑 #희망 #부사가없는삶은없다 #에세이추천 #소위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