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말하기'보다 '보여주기'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까지 전부 다 '보여주려' 한다면 독자의 관심이 멀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소설 첫 부분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세부 사항들을 모두 빼는 게 좋습니다. 너무 일상적인 행동으로 소설을 시작하지 마십시오.
보여주기를 잘하기 위해 묘사를 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잘한 세부묘사가 지나치게 많으면 오히려 좋지 않습니다. 보여주기를 극단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이야기의 진행 속도가 무척 느려집니다. 그러니 소설에서는 중요한 것들만 보여주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1. 중요하지 않은 세부 사항은 말하기가 낫습니다. 단, 플롯을 이끌고 나가는 장면,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고 인물 자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장면,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장면, 이야기의 절정에 이르는 장면 등은 반드시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중요하지 않지만 독자에게 알려두고 싶은 정보를 요약하여 전달할 때는 '말하기'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등의 일상적 행동이 특히 그러합니다. 같은 일상적인 행동이라도 플롯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라면 상세히 '보여줄' 수도 있고요.
일상에 미세한 잔금이 갔다. 사람들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고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보고서의 중요한 부분을 누락시키기도 했다. 평소 완벽하고 빈틈없던 그였기에 자잘한 실수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소위의 '초상화의 눈' 중에서
주인공의 일상이 초상화 때문에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로 전달했습니다. 분량이 긴 소설이라면 이 부분도 '보여주기'를 활용하여 좀 더 서스펜스를 조성할 수 있을 겁니다. 플롯 전개에 불필요한 장면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초단편의 특성상 아주 중요한 한두 장면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므로 말하기를 적절히 섞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여주기'와 '말하기'의 비율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닙니다. 각각의 소설 속에서 작가가 어떻게 조율하느냐의 문제 같습니다.
2. 장면을 전환하는 데 유용합니다. 시간을 건너뛰거나, 시점을 바꾸거나,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경우를 말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거리를 얼마나 이동했는지, 장면과 장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을 보고하기 위해 '말하기'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현수가 이 동네에 와서 빵 가게를 연 지 어느새 오 년이 흘렀다. 고시생이었던 그가 제빵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혀를 찼다. 아버지는 그때 이후로 현수의 얼굴을 다시 보지 않았다.
소위의 '에그타르트' 중에서
현수는 현재 제빵사이고 자살하려고 했던 때부터 오 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걸 '말하기'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수에 대한 정보는 간략히 '말하기'로 전달했고, 자살을 시도했던 장면들은 '보여주기'로 최대한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그게 소설의 전체 흐름상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 똑같은 정보를 한 번 이상 되풀이하여 '보여주지' 않아야 합니다. 이때 간접화법(~라고 했다)을 사용해 '말하기'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되풀이하여 발생하는 사건을 요약하는 데도 '말하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혹시 살면서 죄를 많이 지어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요? 하고 물었더니 셋 다 도끼눈을 떴다. 큰 선행을 베풀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 죄를 지은 적도 없는 평범한 삶이었다고 했다.
소위의 '고구마 맛탕' 중에서
세 여자의 답변을 일일이 대화로 구성하여 보여준다면 분량도 길어지고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습니다. 간접화법을 활용하여 요약하여 전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장편소설이라면 이런 장면들도 다 '보여주기'로 구성하는 게 좋을 것 같고요!!
4. 이야기의 속도가 느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말하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정보 하나를 재빨리 전달하고 싶을 때 '말하기'는 좋은 수단이 되지요. 또는 몰아치는 사건을 보여준 다음 독자에게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을 주기 위해 '말하기'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강약중강약 셈여림표처럼 말이죠. 이 역시 독자와의 밀당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말하기'를 통해 장면의 맥락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선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양아버지에게 파양을 당했다. 시설로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곳에 있으면 늘 허기가 졌다. 외로움이 아가리를 벌린 뱀처럼 득시글거렸다. 자퇴를 하고 가출팸으로 들어갔다.
- 중략 -
익숙한 교복에 눈알이 뒤집혔다. 같은 고등학교 친구를 겁탈하는 형을 보자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죽도록 맞고 나서야 가까스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문신으로 도배한 가출 청소년을 받아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당장에 먹고사는 게 급해 소매치기가 되었다. 주로 만취한 사람들의 지갑만 노렸다. 팔 위의 문신처럼 선우의 삶에 물든 어둠도 좀처럼 지워지질 않았다.
소위의 '소매치기' 중에서
선우가 왜 소매치기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착한 소매치기라는 점을 전달하기 위해 그의 과거사를 짤막하게 '말하기'로 전달한 것이죠. 그래야 지갑을 훔치고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는 그의 행동을 독자가 납득할 수 있을 테니까요.
6. 독자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서스펜스를 조성하기 위해 '말하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7. 소설의 초고를 쓸 때 '말하기'를 사용합니다. 일단 떠오르는 대로 속도감 있게 쓰고 고쳐 쓰는 단계에서 '말하기'를 '보여주기'로 고쳐 써야 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는 실제 소설 집필 과정에서도 아주 유용합니다. 장면 하나하나의 구성에 신경 쓰다 보면 집필 속도가 너무 느려지거든요. 일단은 이야기부터 빠르게 쓰고 나서 나중에 고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샌드라 거스는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는 지나치게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보여주고 말해주라'라고 하지요. 작가는 '보여주기' 기술과 '말하기'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 자신의 소설에서 말해줄 곳과 보여줄 곳을 신중하게 선택하여 배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여줄 곳 : 중요한 정보, 인물의 감정
*말해줄 곳: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필요한 정보
*뺄 곳: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
1. 독자가 정말로 알아야 하는 정보인지 확인하라.
2. 반복을 피하라.
3. 힘이 강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동사와 구체적인 명사를 사용하라.
4. 재미있게 써라.
오늘 글이 '묘사의 힘' 마지막 글인데요. 약간 허탈한 결론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묘사가 뛰어나다고 무조건 훌륭한 작품은 아니라는 겁니다. 모든 주도권은 독자에게 있습니다. '보여주기'나 '말하기'의 비율로 작품의 가치나 수준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보여주기'를 잘하고 묘사가 완벽해도 재미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니까요.
샌드라 거스도 말합니다. 재미있게 쓰라고! 보여주어야 할 때 말했다거나 말해야 할걸 보여주었다고 해서 작품이 망하는 건 아니란 말이지요. 어떤 방식으로 쓰더라도 재미있을 수만 있으면 되는 겁니다!! 아, 얼마나 잔인한 말인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작법 이론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확률적으로 이렇게 해야 재미있고 독자들이 더 잘 읽더라 하는 전문가들의 검증된 견해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아는 것 아는 것이고, 글은 스스로 쓰면서 성장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저의 초단편소설을 읽어 보시면서 이론과 실제를 비교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 소설은 '영원한 삶'입니다. 읽으시고 재미있으셨다면 '밀어주리' 부탁드립니다. ^^
https://short.millie.co.kr/tuiu4x
밀리의 서재에서 3관왕을 한 초단편소설집 '돈 워리'에도 밀어 주리 부탁합니다.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이지만 주인공들이 우연과 운명으로 얽혀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소설 쓰기나 초단편 쓰기에 관심 있는 분들! 한 번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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