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북은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시리즈(첫 문장의 힘, 시점의 힘, 묘사의 힘, 퇴고의 힘)의 내용에 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결합하여 쓴 글입니다. 그러므로 작법에 대한 이론은 개인 의견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한 것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인물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묘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외모를 묘사하는 세부 사항들을 너무 길게 열거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배경과 마찬가지로 인물 묘사도 여기저기 조금씩 흩뿌려 놓습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부분만 묘사합니다. 사람마다 눈여겨보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상대의 눈을 먼저 보고 어떤 사람은 발목을 보기도 합니다. 무엇을 눈여겨보는가는 시점 인물의 특성에 대해서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을 볼 때 발목을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이라면 평범하지 않은 성격이거나 뭔가 사연이 있다는 걸 암시할 수도 있겠지요.
배경 묘사와 마찬가지로 정적인 동사 대신 힘이 강하고 동적인 동사를 사용합니다. 가장 뛰어난 묘사는 외모와 함께 그 사람의 성격도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시점 인물이 사용할 법한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다른 인물을 묘사한다면 인물과 함께 시점 인물의 특성까지도 한꺼번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밤 식빵에서 밤이 붙은 부분만 떼어먹고 빵만 있는 부분은 남겨 두곤 했다.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너덜거리는 빵은 도무지 맛있을 거 같지도 않고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밤만 빼먹은 빵은 기대감을 잃은 채 몇 날 며칠을 식탁 위에서 굴러다니다 음식물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기회란 기대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이제 인생은 도준이라는 밤을 빼먹고 남은 밍밍한 빵 쪼가리 같은 것일 뿐이었다. 먹지 않고 버려도 그만인.
- 소위 김하진의 <이상한 거래> 중
제가 밤 식빵으로 인물의 심리 상태를 묘사한 이유는 그녀와 도준 둘 다 제빵사였기 때문입니다. 인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재를 활용하여 묘사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인물의 모습이나 배경에 대한 정보는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의 흐름에 꼭 필요한 만큼만 적절히 보여주면 됩니다. 그리고 말하기보단 되도록 '보여주기'로 전달할 방법을 궁리해야 하는 것이죠. 배경을 인물의 움직임과 한데 버무려 놓거나 대화 속에 인물에 대한 묘사를 슬쩍 끼워 넣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지루하게 인물이나 배경을 서술하는 데 지면을 할애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혼모노' 속의 단편인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의 경우 시작 부분에 '구의 집'에 대한 배경 설명이 상당히 길게 나옵니다. 약간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느껴질 즈음 본격적인 사건으로 돌입하더군요. 더 길었다면 이탈하는 독자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앞부분의 설명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모든 건 작품이 말해 줍니다. 인물이나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작품 전체의 의미 전달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라면 비중을 더 늘려도 상관없는 거겠죠. 어디까지나 작가의 영민한 계산과 의도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별다른 목적도 없이 인물이나 배경을 장황하게 말하고 있다면 퇴고하면서 과감히 없애 버리거나 '보여주기' 장면으로 바꿔야겠지요.
감정에 이름을 붙여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기뻐서, 화나서, 슬퍼서, 두려워서' 등의 단어는 아예 빼버리는 게 낫습니다. 인물이 하고 있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를 주어로 하여 힘 있는 동사와 짝을 지으면 효과적일 때도 있습니다. '기쁨이 몸 밖으로 흘러넘쳤다. 분노가 숨통을 조였다.'처럼요. 하지만 이런 표현도 자주 쓰면 효과가 반감합니다. 어쩌다 한 번 활용하면 좋겠지요.
1. 감정은 언제나 신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감정을 직접 말하지 말고 신체 반응으로 표현하면 됩니다. 두려웠다고 하지 말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하는 것처럼요. 감정에 따른 여러 신체 반응들을 미리 생각해 두고 이것저것 다양하게 골라 쓰면 좋습니다. 그런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라는 표현이 한 소설에서 여러 번 등장하면 안 되겠지요. 다음번엔 '식은땀이 등줄기로 흘렀다'로 바꾸어 표현하면서 변화를 주는 게 좋습니다.
2. 몸짓언어와 행동으로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다, 부끄럽다, 조바심이 난다' 등을 말로 하지 않습니다. 인물이 하는 행동만으로 그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찾으십시오.
3. 얼굴 표정을 묘사하는 것으로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4. 대화를 활용하여 감정을 표현합니다.
5. 소설의 매력은 인물의 머릿속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내적 독백(생각)을 통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적 독백은 작은따옴표를 사용해 구분하지만 1인칭 주인공 시점이나 3인칭 깊은 시점 등 인물이 화자인 경우엔 굳이 구분하지 않고 직접 서술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작은따옴표를 일일이 사용하지 않는 게 낫기도 하지요.
모두가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집에 있는 모나리자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다 눈이 같은 걸까? 화가에게 이유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소위의 <초상화의 눈> 중에서
이 부분은 다 인물의 내적 독백(생각)에 해당합니다. 그중 '어째서 다 눈이 같은 걸까?'는 마음속에서 하는 혼잣말인데요. 이런 걸 굳이 작은따옴표로 구분하지 않는 게 더 자연스럽다는 뜻입니다.
6. 날씨 묘사로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을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같은 비라도 인물의 감정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매서운 야수의 울부짖음처럼 들릴 수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의 다정한 속삭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7. 감정이 고조되어 있을 땐 오감도 한층 예민해집니다. 그러므로 오감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가능하겠죠.
8. 은유나 직유 같은 비유를 사용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런데 과도하면 글이 가식적으로 느껴지고 이야기의 진행이 늘어져 지루해집니다. 적당한 간격마다 한 번씩 효과적인 비유를 넣어 주세요. 그리고 연달아 나오는 비유가 서로 대립되는 이미지라면 비유의 효과를 상실할 수도 있으니 유의하시고요. 앞에서 인물이 나비처럼 하늘거린다고 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물의 행동을 둔탁하거나 거친 이미지로 묘사한다면 두 묘사 다 한꺼번에 힘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사람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누구는 화가 나면 조용히 침묵하고 누구는 울그락불그락하며 행동이 커지지요. 그래서 '보여주기'만으로 모든 걸 드러내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몸짓 언어만으로 인물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울 때는 대화나 내적 독백 등을 함께 결합하여 감정을 분명하게 드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위에 제시한 8가지 방법들을 여러 개 섞어서 쓰는 것이지요.
오늘은 소설의 핵심에 가까운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소설은 묘사가 전부라는 생각도 듭니다. 말하기의 유혹을 견디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소설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하기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때로는 보여주기보다 말하기 한두 문장이 훨씬 나은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다음 시간엔 효과적인 말하기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밀리의 서재에서 3관왕(이 달의 밀크 우수작품 선정, 분기별 우수작품 선정, 2025 밀리로드 Top 50위 진입)을 한 초단편소설집 '돈 워리'가 좋은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댓글수 Top 10의 인기작이자 '지금 주목할 작품'에 선정되었습니다. 소설 쓰기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응원과 밀어주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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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예고편 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