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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Jun 03. 2023

초2 아들이랑 목욕한다고?

엄마는 아들과 언제까지 목욕해도 되는 걸까요.

"엄마,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러면 어떡해? 으아앙."

아들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OO아, 너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잖아. 엄마는 여자고 너는 남자야. 엄마도 초등학생 때 아빠랑 목욕한 적 없어. 이제는 정말 같이 씻는 건 안 되는 거야."

"으아앙. 몰라. 그래도 하루아침에 이러는 게 어딨어. 2학년 때까지는 같이 씻을 거야. 으아앙."

"휴..."


나는 육아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는 문외한이다. 아이 하나를 낳아서 키우고 있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한히 다양한 아이들을 알지 못한다. 아니 다른 애들은 둘째치고 내 아이조차 정확히 모른다. 아이를 임신해서부터 낳고 키우는 동안 모든 것들을 책과 인터넷으로 공부했다. 다행히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서 탈이지 부족하지는 않은 시대이다. 육아 관련 책도 엄청나고 육아 전문가들이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 나와서 많은 것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근데 육아라는 것이 그렇다. 평소에 암만 열심히 공부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엄마 자신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저절로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옛 어르신들 말씀처럼 '엄마도 쉽게 바뀌는  아니다.' 왜냐면 엄마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엄마들치고 자식 키우는 일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학창 시절 성적은 나빴더라도 육아에 있어서만큼은 열에 아홉이 우등생에 가깝다. 자식에게 무관심하고 될 대로 돼라 하는 엄마는 세상에서 본 적도 없고 있지도 않다. 엄마들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어떻게 해서라도 고쳐서 아이를 건강하고 똑똑하고 행복한 어른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그러니 열심히 책을 찾아 읽고 강연도 듣고 상담도 받으러 다니고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애써 배운 육아 정보를 얼마만큼이나 현실 육아에 녹여내면서 아이를 키우는지는 의문이다. 머릿속으로 아는 건 아는 거고, 나는 그저 나란 사람의 성정 그대로, 다시 말해 생겨먹은 그대로 아이를 키워온 게 아닐까?


갓난쟁이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어떤 육아책에서는 그랬다. 아이를 철저히 길들여야 한다고. 애가 울든 말든 먹일 때 먹이고 재울 때 재우면 결과적으로 아이에게도 좋고 육아도 그다지 힘들지 않다고 했다. 굉장히 유명한 책이어서 많은 엄마들이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그렇게 키울 수가 없었다. 언젠가 갓난쟁이를 키우는 엄마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아이가 칭얼대지도 않고 정말 그림처럼 잠을 자길래 신기해서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책의 육아법대로 수유하고 재우고 규칙적으로 했더니 이렇게 편해졌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한동안은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고 힘들어했지만 조금만 견디면 되더라고 한껏 의기양양해하기까지 했다. 나는 도무지 그 방법이 내키질 않았다.


마음 약한 나는 밥 달라면 주고 잔다면 재우는 엄마였다. 심지어 밤중 수유에 좀비가 되어버렸을 때에는 같이 누워서 자다가 누운 상태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그러다 둘이 같이 잠이 드는 상황까지 갔다. 이건 육아 책에서는 아주 학을 떼는 방식이었다. 아이가 젖을 물고 잠이 들면 이에도 안 좋다고 하고 뭐 대강 상상해도 무식하고 원시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졸려 미치겠을 때는 나도 자면서 아이도 편안하게 재우는 이 방식을 그냥 써먹었다. 단유를 하는 시기에는 울어도 젖을 물릴 수 없으니 조금 더 고달팠다. 그래서 쓴 방법이 아이가 젖을 달라고 울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업어서 달래는 것이었다. 한밤중이라도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계속해서 아이를 업고 돌아다녔다. 아이가 엄마 젖으로부터 차단당할 때 느낄 절망이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엄마 등에 업혀서 엄마의 체온을 느끼면 아이도 덜 속상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육아 책을 수십 권 읽은 나이지만 아이를 키운 방식을 보면 어디 가서 말하뭐 할 만큼 단순무식하기 짝이 없다. 아이를 키울  처음엔 생후 1개월부터 시작해 개월수를 세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세라는 나이로 세는 단계에 이른다. 그런데 각 개월마다 각 나이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많은 발달 정보와 엄마가 해야 할 바람직한 육아 방법들이 제시되곤 한다. 머릿속에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런 정보들을 열심히 욱여넣었다. 오은영 박사님 책을 읽으면서는 '내가 그때 왜 아이에게 런 말을 했을까?' 하고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책에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까지 붙이면서 앞으로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엄마가 되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8년 여의 시간을 곰곰이 돌이켜보면, 내 육아는  '엄마로서의 본능과 육감'에 더 크게 지배당했던 거 같다.


아무리 책에서 좋다고 하는 것도 아이가 불행하게 느끼거나 엄마가 너무 억지스럽게 느낀다면 굳이 따르지 않았다. 지금 목욕 문제도 그렇다. 친정엄마는 내가 아들을 씻기는 장면을 보더니 학을 떼고 놀라셨다. 초등학교 2학년 짜리랑 같이 씻으면 되겠냐고. 당장 그만두라고 호통치셨다. 하지만 아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욕실에는 같이 들어가되 아들 먼저 씻겨서 내보내고 엄마는 나중에 씻겠다 했더니 그건 같이 씻는 게 아니란다. 그럼 아빠랑 씻으라 해도 안 씻는다고 버틴다. 이리저리 피하다 기어이 엄마 씻을 때 자기도 씻겠다고 따라나선다. 사실 아들 말에도 일리는 있다. 여태껏 예고도 없다가 하루아침에 같이 안 씻겠다 하니 얼마나 원통할 것인가? 며칠간 이런저런 실랑이를 벌이다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올해까지만 같이 씻자는 것이었다. 아들도 이 부분엔 마지못해 약속을 해주었다.


뭐가 옳은지는 나도 모르겠다. 전문가들은 나를 보고 말도 안 되는 엄마라고 비난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여태껏 아이와의 행복한 관계를 최우선에 두고 아이를 키워왔다. 물론 내가 잘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야말로 실수투성이 엄마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들의 간절한 바람을 차갑게 외면해 버리는 엄마가 될 수는 없다. 그건 그냥 나란 사람의 성정이 그러해서이다. 마음 약한 나는 아들을 대단한  사람으로 키우기엔 한참 부족한 엄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들이 다른 사람의 눈물을 외면하지 못하는, 조금은 여리더라도 가슴이 따듯한 사람이 된다면 좋겠다. 살아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상처 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대체로 따듯한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다른 엄마들은 대체 몇 살까지 아들이랑 목욕하는 걸까?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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