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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y 01. 2023

엄마의 '오므라이스'와 나의 '붕어빵'

내 삶은 곱디고운 조각보

새벽을 울리는 전화벨...

"무슨 일 있어?"

"응급실이야."

"응, 갈게."

익숙한 루틴이 시작된다.

간단한 짐을 꾸리고 기차역으로 출발.

운전을 하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기에 병간호가 힘들다는 걸 안다.

차는 기차역에 두고 기차를 탄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향한다.

병원에 도착하면 접수표를 뽑고 보호자 확인 후 응급실로 들어간다.

응급실 어느 구역으로 가야 하는지도 안다.

심장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늘 같은 구역에 있기 때문이다.

주저함 없는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곳에는 늘 그녀가 있다.




대전의 모 대학병원은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곳이다. 여기서 아버지를 보내드렸고 어머니의 긴 투병도 함께하고 있다. 소화제 한 번 안 드시고 정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먼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도 돌아가신 후에도 여전히 투병 중이시다. 어머니는 이 병원에서 동생 둘도 먼저 보냈다. 중요한 시험을 보던 날도 아이를 낳기 전 만삭일 때도 아장거리는 아들을 키울 때도 지금 이 순간도 병실 풍경이 여기저기 기워놓은 헝겊마냥 삶에 덧대어져 있다.


엄마가 심장병을 앓기 시작한 지는 10년쯤 되었다. 죽음을 넘나든 것도 여러 번, 눈물을 쏟으며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달려간 것도 여러 번.. 그렇게 어느새 10년이 흘렀다. 지금의 루틴이 결코 처음부터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반복은 무섭다. 일상의 힘이 단단하고도 견고한 까닭은 반복에 있음이 틀림없다. 의도하지 않은 반복된 행동들이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일상의 벽을 만든다. 내게 어머니의 투병은 63 빌딩급의 높고 견고한 일상의 벽이다.


기억이 닿는 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는 아팠다. 지금의 심장병이 아니어도 어머니는 내게 늘 환자였다.  살아오는 내내 보살피고 돌봐야 할 사람. 그리고 그녀에게 하나밖에 없는 딸. 나.


때로는 버거웠고 때로는 애틋했던 나의 어머니. 오늘도 그녀는 아파서 나를 찾는다. 눈보라가 치는 기차 밖 풍경을 바라보며 아름답지만 잔혹한 삶에 대해 생각한다. 기차 밖 풍경들이 쏟아지는 눈에 뒤덮여 그 색을 잃어버린 채 온통 하얗다. 하얀 눈 너머로 보이는 하얀 환자복. 하얀 병실. 하얗게 질린 그녀의 입술.


나조차도 병원의 구석구석이 머릿속에 이렇게 낱낱이 그려지는데 그녀는 얼마나 지긋지긋할까. 피붙이들을 보내고 남편을 보낸 그곳에서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속도조차 한층 빨라져 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떠할까.


며칠을 속이 아파 끼니를 못 챙겼다는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내게 주문을 한다.

"병원 앞 분식집에서 파는 오므라이스를 먹고 싶어.

짜지 않게 케첩은 뿌리지 말고."

종일 굶은 나는 찬기가 드는 몸을 외투로 단단히 감싸 쥐고 식당으로 향한다. 간을 하지 말고 달라는 말은 음식점 주인에겐 황당하고도 불쾌할 수 있기에 잔뜩 굽신거리며 양해를 구한다. 주인아주머니는 나의 사정을 눈치챘는지 간을 뺀 대신 각종 반찬과 국물을 포장 용기에 가득 담아 주시고 소스도 한 통 따로 챙겨 주신다.


"너무 싱겁고 맛없으면 안 되니 반찬이랑 국물이랑 조금이라도 같이 드시라 해요."

"감사합니다. 요구사항이 많아서 죄송했어요. 감사합니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아까는 눈에 보이지 않던 붕어빵 파는 포장마차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와 내가 좋아하는 붕어빵.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몸을 돌려 포장마차 앞으로 간다. 지갑을 탈탈 털으니 500원짜리 두 개가 나온다.


"붕어빵 2개 주세요. 뜨거운 걸로요."

"우리 집 붕어빵은 식을 틈이 없어요."

하며 주인이 허허 웃는다.


붕어빵 봉지를 품에 안으니 따뜻하다. 하늘이 까맣고 눈발이 다시 날리기 시작한다. 이 온기 그대로 그녀에게 가려고 나는 발길을 재촉한다. 가슴에 품은 붕어빵 두 마리가 자꾸만 파닥거리며 속삭인다. 그녀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지 않냐고.


이 풍경들은 구멍 난 삶을 기우는 안쓰러운 헝겊 조각이 아니라 색색이 곱디고운 내 삶의 조각보라고.


출처  Pixabay


이 글은 지난겨울, 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간호하며 쓴 글이다. 이후로도 어머니는 자주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으며, 나는 결국 번아웃으로 휴직을 했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에게 가는 길이다. 어린 아들을 퇴근하는 남편에게 떠넘기듯 맡기고 나는 홀로 어머니에게로 향한다. 오로지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 몫에 가끔은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답답할 때도 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안다. 그저 묵묵히  견뎌야 한다. 나의 버팀이 어머니에겐 생명이 되고 자식에겐 사랑이 되고 남편에겐 힘이 될 것이다. 그저 그럴 거라고 믿는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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