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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댄스홀

크리스탈 비치, 어제의 환호와 오늘의 선율

by Elizabeth Kim

노을은 파도보다 느리게, 그러나 더 깊게 스며들었다.


2025년 여름 저녁, 이리호의 해안가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기타의 첫 음이 허공을 가르자, 하늘은 이미 오렌지빛에서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순간, 해변 전체가 거대한 악기처럼 울리며 여름밤의 무대가 열렸다.


크리스탈 비치는 평범한 해변처럼 보이지만, 한 세기가 넘는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1888년, 종교 집회와 휴양의 결합으로 시작한 작은 마을은 곧 크리스탈 비치 유원지(Crystal Beach Amusement Park)로 성장했다. 버팔로에서 출항한 Canadiana 유람선은 매일 수천 명을 이곳으로 데려왔고, 댄스홀과 롤러코스터는 세대를 아우르는 환호와 열광의 상징이었다.


세월은 결국 유원지를 사라지게 했지만, 해변의 모래와 바람은 여전히 그 시절의 흔적을 품고 있다. 이날 울려 퍼진 밴드의 연주는 마치 잊힌 댄스홀의 혼을 불러내는 듯했다. 보컬의 낮은 음이 퍼질 때마다 파도 소리가 은근히 화음을 이루었고, 바람은 기타줄을 스치며 음색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관객의 대부분은 은퇴 후의 삶을 즐기는 이들이었다. 어떤 이는 신발을 벗고 모래 위에서 춤을 추었고, 또 다른 이는 오래된 친구와 나란히 의자에 앉아 어깨를 들썩였다. 눈빛은 자유롭고, 웃음은 세월보다 더 느긋했다.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다 음악에 끌려 춤을 추었고, 연인들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호수를 바라보았다. 은발의 노년 세대는 그 앞에서 삶을 즐기는 법을 보여주었고, 해변은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하나의 무대가 되었다.


곡이 바뀔 때마다 하늘은 주황에서 분홍, 분홍에서 보랏빛으로 변하며 무대를 장식했다. 노을은 음악의 또 다른 연주자였다. 마지막 곡이 끝나자 태양은 이리호 건너로 완전히 사라졌다. 무대의 조명도 하나둘 꺼졌지만, 여운은 파도와 바람 속에 오래 남았다. 캐나다에서 오대호를 따라 살아가며 만나는 순간들이 이렇게 소박하고 조용하다는 사실이 오히려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노을빛 해변에서 음악을 즐기고, 세월을 품은 이들과 함께 웃던 시간이 결국 인생의 여행이다. 그 여행을 글로 붙잡는 일은,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삶의 멜로디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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