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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흐르는 항구, 포트 콜본

하루쯤 멈춰도 괜찮은 이유

by Elizabeth Kim

나이아가라 웰랜드로 이사 온 지 사흘째였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머리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이 낯선 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었다. 그때 문득, 나이아가라 근교의 작은 항구 도시가 떠올랐다. 포트 콜본! 그 이름은 오래전부터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단어였다.


차를 몰고 남쪽으로 한 시간쯤 달렸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웅장한 물살이 잦아들 무렵, 조용한 항구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은 웰랜드 운하가 흐르는 도시였다. 1833년, 폭포를 우회하기 위해 건설된 이 운하는 한때 농촌이었던 포트 콜본의 운명을 바꾸었다. 이리호에서 온타리오호로, 세인트로렌스 강을 거쳐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길목. 배들은 이곳을 지나며 북미의 심장을 관통했다. 지금도 하루 수십 척의 화물선이 묵직한 몸체로 도시를 천천히 가로지른다.


운하 옆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4월의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하지만 햇살은 분명 봄의 색을 품고 있었다. 수면 위에는 다 녹지 않은 얼음 조각들이 떠 있었고, 그 얼음이 물살에 흔들리며 천천히 흘러갔다. 얼어 있던 시간과 녹아드는 시간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는 듯했다.


운하변 벤치에 앉아 배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수문이 열리고, 배가 천천히 들어오자 시간마저 느려지는 기분이었다. 예쁘지도 않은 거대한 선체의 움직임이 이상하리만큼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저 묵묵히, 자신만의 리듬으로 흘러가는 그 모습이 왠지 편안했다. 포트 콜본은 웰랜드 운하의 마지막 관문, Lock 8이 자리한 도시다. 배들은 그곳에서 수위를 맞추고 이리호로 나아간다. 배가 오르고 내리는 순간마다 도시는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흐르기 시작한다.


해가 기울 무렵, 니켈 비치(Nickel Beach)로 향했다. 잔잔한 물결과 바람이 맞닿는 호숫가. 부드러운 모래 위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속엔 봄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노을은 수평선 위로 천천히 떨어졌고, 세상은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멈춰 선 시간, 그 자체가 위로였다. 포트 콜본의 매력은 풍경에만 있지 않다. 이곳에는 삶의 리듬이 있다. 그리고 그 리듬은 언제나 느리다.


여름이 되면 도시 전체가‘카날 데이즈 헤리티지 축제(Canal Days Heritage Festival)’로 들썩인다. 1979년, 항구의 역사와 웰랜드 운하의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축제다. 지금은 매년 수만 명이 찾는 온타리오 남부의 대표 여름 축제로 자리 잡았다.


2025년 축제는 8월 1일부터 4일까지 열렸다. 토론토에서 친구들이 내려와 함께했다. 항구 거리에는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손에 피시 앤 칩스와 수제 맥주를 들고 걸었다. Breakwall Brewing의 시원한 라거 한 잔이 여름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파이 가이즈 베이커리(Pie Guys Bakery)의 고소한 빵 냄새가 바람을 타고 골목마다 퍼졌다. 하늘이 어두워질 무렵, 항구 위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아이들의 환호가 바람을 따라 흩어졌다.


다음 날,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됐다. 오래된 범선, Tall Ships가 물살을 가르며 항구로 들어왔다. 돛이 펼쳐지고, 밧줄이 바람에 울렸다. 그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엠파이어 샌디(Empire Sandy)도 있었다. 100년 가까운 세월을 품은 배가 여전히 바다의 냄새를 싣고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날 오후, 나는 등대 투어에 참여했다. 일 년에 단 네 번만 열리는 특별한 여정이었다. 작은 보트를 타고 운하를 따라 나아가야만 닿을 수 있는 고요한 섬의 등대다.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차졌고, 세월의 흔적이 묻은 외벽이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곰팡이와 낡은 목재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폐 속 깊이 스며들었다. 삐걱거리는 계단, 벽에 남은 낙서, 손때 묻은 문손잡이까지... 모든 것이 ‘살아 있었던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등대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자원봉사자였다. 은퇴한 선장은 안전을 챙기고, 대학생 가이드는 이 지역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안내문을 나눠주던 소년은 중학생이었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오래 남았다. 돌아오는 보트 위에서 “내년엔, 나도 이 투어의 봉사자가 되어야지.”라고 조용히 다짐했다.


포트 콜본은 작고 조용한 도시다. 화려하지 않지만, 따뜻하다. 오래된 등대와 새로 문을 연 카페가 나란히 서 있고, 배들이 지나가도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이곳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그 느림이, 오히려 삶을 더 깊게 만든다. 세상은 늘 앞을 향해 달린다. 하지만 얼음이 녹듯 천천히, 배가 수문을 통과하듯 조심스레, 가끔은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포트 콜본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나를 느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멀리 항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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