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선물로 남은 여정
캐나다에 사는 우리는 매년 가을이 되면 자연의 예술 작품과 마주한다. 단풍은 마치 마법과도 같이 숲을 물들이며,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 속으로 떠날 기회를 선사한다. 나 역시 매년 알곤퀸 주립공원의 트레일을 걸으며 단풍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이번 가을은 특별한 계획을 세웠다. 단풍 여행의 정수들을 모두 담아내고 싶어 온타리오 주의 여러 명소들과 미국 미시간 호수까지 포함한 여정을 준비했다. 그 여정을 이제 차근차근 풀어보려 한다.
첫째 날: 알곤퀸 주립공원의 센테니얼 리지스 트레일
여정의 시작은 단연코 온타리오 최고의 단풍 명소 중 하나인 알곤퀸 주립공원(Algonquin Provincial Park)이다. 센테니얼 리지스 트레일(Centennial Ridges Trail) 위로 걸으며, 붉게 물든 메이플 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진 숲을 바라보았다. 해발 고도가 높고 10 킬로미터가 넘는 이 트레일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가을의 파노라마 풍경이 일품이다. 트레일 곳곳에서 만난 산들바람은 낙엽을 흩날리며 자연과 함께 춤추는 기분을 선사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단풍이 쌓인 길이 푹신하게 발을 감싸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루프로 되어 있어, 파란색 표지를 따라 걸으면 1번부터 나오고, 흰색의 표지를 따라가면 마지막 사이트인 13번부터 나온다. 감탄을 자아내는 봉은 누가 뭐래도 11번이라 하겠다.
둘째 날: 토버모리에서 마니토울린 아일랜드로의 여정
토버모리(Tobermory)에서 마니토울린 아일랜드(Manitoulin Island)로 향하는 배를 타고 새로운 풍경을 맞이했다. 토버모리는 그 자체로도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섬으로 이동하며 보이는 풍광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페리를 타고 가며 섬에서의 풍경을 기대하는 설레는 마음도 이번 단풍여정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여정이라 하겠다. 맑은 물결 위로 비치는 단풍나무들의 반영이 수면 위를 물들였고, 그 경치는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마니토울린 아일랜드는 원주민 문화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다음엔 원주민 문화를 주제로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셋째 날: Cup & Saucer 트레일과 Bridal Veil Falls
Cup & Saucer 트레일은 온타리오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베스트 트레일 중 하나다. 이곳에서는 마치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르면, 발아래로 펼쳐진 숲의 끝없는 물결과 파란 하늘이 맞닿아 있었다. 한 발자국씩 앞으로 갈 때마다 가슴이 뛰고 무섭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주의하라. 단풍에 물든 숲이 보여주는 색채의 깊이는 자연이 그린 예술 작품 같았다. 이어 방문한 Bridal Veil Falls에서는 떨어지는 물줄기와 단풍의 조화가 장관을 이뤘다. 물소리와 함께 나무 숲을 보고 있는 시간은 내면의 평화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넷째 날: 쑤세모리에서 아가와 캐년 트레인 투어
쑤세모리(Sault Ste. Marie)에서 출발한 아가와 캐년 트레인 투어(Agawa Canyon Train Tour)는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가장 기다렸던 여정이기도 하다. 기차를 타고 10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투어는 온타리오 북부의 원시림과 단풍으로 물든 협곡을 지나게 한다. 기차의 리듬에 몸을 맡기며 바라본 창밖 풍경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계곡에 도착해 약 90분 동안의 하이킹을 즐기며 만난 Agawa Canyon Lookout(아가와 캐년 전망대), Bridal Veil Falls(브라이덜 베일 폭포), Black Beaver Falls(블랙 비버 폭포)는 계절의 깊이를 느끼게 해 주었다.
다섯째 날: 미시간 호수와 슬리핑 베어 듄스의 절경
미국의 미시간 호수(Lake Michigan)로 이어진 여정은 가을의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슬리핑 베어 듄스(Sleeping Bear Dunes)는 ABC 뉴스, "굿모닝 아메리카"에서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선정되었을 만큼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모래언덕에서 바라본 단풍 풍경은 거대한 모래 언덕과 푸른 호수가 어우러진 독특한 장관을 보여주었다. 듄스 트레일은 1번부터 27번까지 2시간 이상을 걷는 트레일로 언덕을 걸어가며 만난 가을빛 나무들은, 마치 자연이 건네는 따뜻한 인사 같았다. 마지막 27번까지 가면 앞에 바다와 같은 미시간 호수를 마주하게 된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모래 언덕이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조화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여섯째 날: 세인트 클레어 강과 함께 하는 휴론호에서의 마무리
마지막 여정은 세인트 클레어 강(St. Clair River)과 휴론호(Lake Huron)호 주변을 따라 걸으며 마무리했다. 고요한 물결과 함께 하는 가을의 풍경은 이번 여행의 여운을 더욱 짙게 남겼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호수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은 내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여유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이번 여정의 마무리는 비록 간결했지만, 그 여운은 내 마음 깊숙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이번 단풍여행은 자연 속에서 나를 찾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단순한 풍경 감상을 넘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자연 속에서 경험한 순간들은 매일의 소소한 걱정들을 잊게 했고, 단풍이 물들어 가는 과정을 보며 나도 마음속에 새로운 색을 채워 넣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마음에 남은 가을의 색채는 오래도록 나와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