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다음 날 정신없이 나는 그날의 루틴을 소화하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뜸과 동시에 바삐 샤워하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린 후 겨우 눈만 뜨는 지한이를 챙겨서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있다. 이렇게 나는 매일을 꾹 참고 버텨가며 하루를 보낸다. 그래도 하원부터는 옆 동에 계신 이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 감사하게도 이모님께서 저녁 늦게까지 지한이를 봐주셔서 평일에는 종종 야근도 할 수 있고 짧게나마 친구들과 저녁을 먹을 수도 있다.
전남편과 분리하기 전부터 이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아빠가 떠나고 나서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는 것보다 함께 있을 때 적응시키는 것이 지한이에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혼자서 모든 것을 소화하기에는 부족한 나의 체력도 걱정되었고 내 정신건강도 걱정되었다.
부모님의 도움을 절실하게 받고 싶었지만 이미 부모님은 언니 곁에서 조카를 봐주고 계신다. 나의 이런 일로 그 루틴을 깰 수 없다. 모두에게 불편한 죄송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아빠가 떠난 빈자리를 채워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이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하나같이 당근마켓을 추천했다. 그렇게 나는 이모님을 만났다.
언제나 나는 집안이 복작복작하고 항상 시끄럽고 소음과 웃음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나와 지한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로 우리 집 공간이 가득 채워지길 너무나 희망했다. 이건 누군가의 도움 없이 나 혼자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거짓말처럼 우리의 곁으로 오신 이모님은 우리 아파트의 옆동에 살고 계시는 분이었고 장성한 두 딸과 남편, 그리고 어머님과 대형견 연두까지 키우는 대가족의 일원이셨다.
집에 일찍 오는 날이면 한동안은 이모님과 지한이와 함께 식탁에 앉아 이것저것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게 일이었다. 이렇게 좋은 분이 우리 곁에 오셨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을 만큼 내 온몸이 감사한 분이다.
이모님의 첫째 딸과 나는 겨우 3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이 곧 해외주재를 나간다는 말에 이모님은 내가 더 안쓰럽게 보였던 것 같다. 자신의 딸 같은 아이가 앞으로 네 살짜리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한다니..라는 마음이 드셨나 보다. 처음에는 이모님께 이혼 얘기도 할 수 없었고 단지 남편이 주재원에 나가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었다. 물론 아이 아빠가 떠나고 난 나중에는 이혼하게 되었다고 진실을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전남편이 해외파견을 가고 난 후로 이모님은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에 오셔서 반찬과 각종 음식들을 챙겨주셨다. 주말 아침에도 오랜만에 김밥을 싸셨다며 아직 따듯한 밥의 온기가 남아있는 그 김밤을 내 입에 넣어주시는 분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집김밥. 지한이를 임신했을 때도 집에서 싼 김밥을 제일 좋아했다. 이모님의 따듯한 김밥에 불현듯 어렸을 때 엄마가 종종 만들어주었던 집김밥이 생각났다.
'엄마가 먹어야 또 애를 보지.
지한이 엄마 너무 말랐어. 그래서 어떻게 애를 보냐고'
이모님은 아실까.
나는 이모님에게 그냥 너무 불쌍한 아이 엄마로 계속 남고 싶다는 걸. 내가 너무 불쌍해서 이모님이 우리를 절대 떠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걸. 종종 나는 이모님께 같이 살자고 말한다. 진심이 가득한 그 말에 이모님은 활짝 웃으시며 대답하셨다.
'진짜 그럴까? 내가 지한이 등원도 시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