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시월 중순 잔금이 가능한 집은 첫 번째 본 교수님 집과 신혼집이 정면으로 보이는 세 번째 집이었다.
지금 들어갈 아파트는 준공 삼십 년을 앞두고 있는 구축이라 이미 한참 전부터 전체 인테리어를 계획하고 있었다. 마침 어느 남매가 살고 있던 세 번째 집이 가능하다고 하여 내심 마음이 놓였다. 정남향에 창 밖으로 탁 트인 뷰가 마음에 들었던 집이었다. 물론 신혼집이 정면으로 보이는 이슈는 있었지만 그것도 그저 예전 기억으로 아픔을 소화시킨 지 오래다.
세 번째 집을 계약하기로 하고 매도인 계좌번호를 기다리는 동안 남산타워 집의 임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세 만기일에 퇴거한다고 미리 연락을 해둘 참이다.
이혼 후 나는 아이의 삶이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누가 더 옳으나 누가 더 잘못했느냐로 서로 끝까지 싸워가며 아이에게 미성숙한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균형 잡힌 삶이 유지될 수 있을지가 더 중요했다.
처음 이혼을 결심했을 때는 나는 지한이를 지한아빠에게 두고 오려는 생각도 있었다.
나를 가장 아끼는 엄마 아빠가 그러하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레 내게 제안했을 땐 다 그만한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께서 원하는 방향이기도 했으며 실제로 그 옵션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을 하기 시작한 순간
내가 비양육자의 삶을 살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던 날로부터 나는 많이 아팠다.
그리고 그 다짐에 끝까지 붙들릴 수 없던 내가
그렇게 내리 아파오던 내가
내 결정으로 지한이를 키우겠다고 다시 굳게 다짐한 그 순간부터 몸속의 온갖 염증이 한 번에 나았다.
여자 이세연과 엄마 이세연이 가혹하게 싸우다 엄마 이세연이 승리한 순간이었다.
결국 나는 여자이기보다 지한이의 엄마였다.
내 몸의 시스템은 엄마의 사이클로 이미 굴러가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매우 고난했다. 두 명의 자아가 서로 양보하지 않는 싸움을 끌고 갔기 때문이다.
내가 계속 아팠던 이유.
지한이를 키우는 것으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답과 맞서 싸우고픈 어린 시절의 깊숙한 자아가 무릎을 펴고 일어선 순간부터 부서지도록 괴로웠던 것뿐이다.
모든 것이 원래 있어야 했던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한아 고마워.
엄마가 너와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마지막에 선택할 수 있게 도와줘서 엄마는 많이 고마워. 지한이가 없는 삶이었다면 엄마는 무너져 버렸을 거야. 삶에 아무런 희망도 즐거움도 없어 매일매일 우울했을 거야. 아무리 해도 없어지지 않는 깊숙한 곳의 갈증을 다른 사악한 방법으로 채워 넣으려고 했을 거야. 엄마는 지한이에게 너무 고마워.
'여보세요?'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 임대인이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 19층 임차인입니다.'
'네네 잘 지내시죠?'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아 다름이 아니라 저희 집 올해 시월 만기인데 연장 안 할 계획이라 연락드렸어요.'
'아~ 네 나가신다고요.
저도 부동산에 연락해 놔야겠네요.'
'네 만기일 맞춰서 나갈 계획이에요.
건강하시고요. 그럼 만기일 즈음에 부동산 통해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계좌 나왔어요!
가계약금 바로 넣으시면 됩니다.'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큰 금액의 무언가를 산다.
지한이와 내가 살아갈 집. 그곳에서는 그저 무탈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