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수술 1주년과 1년 검진
어느덧 유방암 수술을 한 지 1주년을 맞았다. 동시에 같은 날 1년 검진이 잡혀 오랜만에 본원을 찾았다. 병원에 오기 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서둘러 집에 들어가는 길에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은 참 예뻤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초록 나무들을 매일 집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아프기 전에는 보지 못한 풍경들.
늘 검진이 있는 날은 남편과 동행했는데 이날은 처음으로 나 홀로 집을 나섰다. 병원으로 가는 길, 차에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뭉게뭉게 양떼구름이 떠 있었다. 청명한 하늘만큼이나 내 몸도 깨끗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저 멀리 산속에 둘러싸인 병원을 보며 마치 나 혼자 휴양지에 놀러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심 속 한가운데가 아니라 자연 속에 있어서 그런가. 다시 한번 병원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1년 전 여기 올 때는 모든 것이 두렵고 막막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병원에 혼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책도 읽고, 1층 갤러리에서 그림도 구경하고, 내 얼굴도 사진으로 담아보고. 무엇보다 남편 없이 혼자 왔는데도 불구하고 예전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했다. 그만큼 나의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뜻이겠지?
1년 전에는 모든 검사가 두렵고 무서웠다. 어디가 어딘지 몰라 낯선 병원을 남편과 헤매고 다닌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내 곁에 보호자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병원을 누비는 씩씩한 환자가 되었다.
오후 1시에 첫 검사인데 오후 8시 40분에 마지막 검사가 있었다. 거의 8시간을 병원에 혼자 있게 된 지라 병원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앉아 있으면 초록초록 나무들과 저 멀리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좋았다. 마침 다음날 암환우들과 한강으로 봄소풍을 가기로 되어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읽기로 한 류시화 시인의 시집을 꺼내 읽었다. 알람을 맞추어두고 책을 읽다가 중간중간 검사를 받으러 다녀왔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나와 시계를 보니 밤 9시였다. 늦은 시간인데도 CT실엔 아직 환자가 많았고 낮처럼 환했다. 세상에 아픈 사람은 많고, 늦게까지 고생하는 의료진도 많고,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구나.’ 생각하니 병원에서 보낸 긴 시간도 그리 힘들게 느껴지진 않았다.
이렇게 유방암 수술 1주년이 의미 있게 지나갔다. 암환우들은 수술 후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로 수술한 지 1년이 되면 한 살 먹었다고 표현을 한다. 나는 이제 겨우 꼬꼬마 한 살. 이렇게 1년, 2년,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새 5년이 되어 산정특례를 졸업하는 날도 오겠지. 산정특례가 끝나는 날, 나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과 함께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오늘 나의 한 살 생일을 축하하며 학교 동료 선생님이 축하 메시지와 과일을 선물로 보내주셨다. 1년 동안 고생 많았다고, 열심히 생활한 나를 축하해주시며 앞으로 행복한 일만 있을 거라는 덕담을 해주셨다. 가족도 챙겨주지 못하는 1주년을 기억해주고, 의미를 부여해주시니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프고 나서 감사한 일이 더 많아졌다. 그 감사한 마음에 보답하는 건 앞으로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리라.
1년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다. 그동안 식습관을 고치고, 생활 습관을 바꿨지만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내 마음가짐이다. 누군가 물었다. “할 수만 있다면 암 진단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세요?”라고. 나는 망설임 없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암을 진단받기 전 나의 삶은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이 들 만큼.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아프기 전보다 훨씬 행복하고 자유롭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에 불청객이 찾아왔지만, 나의 삶은 더 풍요로워졌고, 나는 지금 글을 쓰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암환자들은 일반인보다 먼저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나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 암은 내게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바로 오늘이 행복한 삶. 먼 훗날 미래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임을 아프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제 나는 다시 또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나의 인생 2막은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