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 촉각방어에 대하여
아이의 감각통합 문제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소은이의 경우 28개월 무렵에 청각, 촉각, 시각 방어가 두드러져 약 6개월 정도 일상생활이 힘들 지경이었고, 그에 비해 미각과 후각은 상대적으로 덜했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는 예민한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면 남편과 내가 못 맞는 냄새도 소은이는 귀신같이 맡는다. "이게 무슨 냄새야? 이상한 냄새나." 이렇게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하긴 하지만 그걸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편하거나,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소은이뿐 아니라 감각통합 문제를 겪는 아이들 사례에도 미각과 후각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찾기 어려웠다. 감각방어의 종류에도 미각방어나 후각방어는 없으니까. 다만 미각과 후각은 먹는 음식과 관련이 깊어서 미각과 후각이 예민한 아이들은 편식을 하거나 특정 음식을 거부 또는 집착하여 힘든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아이는 입안이 예민해서 특정 음식의 질감과 농도를 참을 수 없기도 하는데 이렇게 입안의 촉각 과민성을 보이는 걸 감각통합에서는 구강 촉각방어라 부른다. 구강방어가 있는 아이들은 일반 아동보다 식사도구, 식사 환경에 민감하고 음식의 질감이나 맛, 냄새 등에 민감하여 새로운 음식을 먹는 걸 힘들어한다. 구강방어가 있는 아이의 경우 분유를 빨지 않으려 하고, 특정 음식 질감을 거부하고, 입 주변이나 입안에 음식이 놓이는 것을 피하려 한다. 또 구역, 구토, 음식 물고 있기, 음식 뱉기, 그릇을 던지는 등의 문제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경우 섭식 발달과정인 이유식과 고형식으로의 이행이 어려워진다.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으면 미각과 후각이 예민한 것일 수도 있고, 입안의 촉각이 과민해서 구강방어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말도 잘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식사를 거부할 때 원인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엄마들은 우리 아이가 밥을 왜 이렇게 먹지 않을까, 왜 이렇게 편식을 할까 힘들고 괴로울 뿐이다.
소은이는 갖난 아이 때부터 분유를 빨지 않으려 했고, 고기를 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기를 주면 다 뱉어버렸고, 그 때문인지 몸무게가 좀처럼 늘지 않았다. 태어날 때는 체중이 많이 나가서 제왕절개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중에는 또래보다 체중이 적게 나가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다섯 살이 된 지금에야 비로소 고기를 좀 먹지만 지금도 고기보다는 채소를 좋아하는 아이이다. 아이 때 고기를 먹지 않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음식이 섞이는 것을 싫어해서 모든 음식을 따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는 것을 싫어하고, 비빔밥처럼 재료가 섞인 것도 싫어했다. 나중에서야 이런 것들이 모두 예민한 아이의 특징이라는 걸 알았다. 감각이 예민한 아이들은 낯선 음식을 꺼리고 먹었던 음식만 먹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음식이 섞이면 그 음식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자신이 정체를 아는 음식만 안심하고 먹는다는 것이다.
특히 소은이는 특정 음료에 집착해서 그걸 끊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돌 때부터 시작한 특정 회사의 배도라지를 아직도 먹고 있는 데 두 돌에서 세 돌 때는 거의 중독이라고 할 만큼 그 음료에만 집착했다. 심할 때는 하루에 배도라지 음료를 10개씩 먹곤 했는데 아무리 다른 걸 먹이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화도 내고, 달래도 보고, 다른 걸로 대체해보려고도 하고, 별 짓을 다 했더랬다. 예민한 기질의 아이는 유독 익숙한 맛을 좋아해서, 목이 마를 때도 배도라지, 배고플 때도 배도라지, 졸릴 때도 배도라지, 슬프고 힘들 때도 배도라지를 찾았다. 몇 년 간 우리가 배도라지 회사에 쏟아부은 돈만 얼마일까. 배도라지 음료는 소은이에게는 마치 영혼의 단짝 같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소은이가 원할 때 배도라지를 주지 않으면 아이는 울고 불고, 자지러지고 난리가 났었다. 배도라지를 줄이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아이가 제법 커서 말길을 알아듣게 되었을 무렵, 의사 선생님을 동원하여 배도라지를 줄여 나갔던 기억이 난다. 치과나 소아과에 배도라지를 들고 가서 아이 몰래 의사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럼 의사 선생님들은 배도라지 주스를 많이 먹으면 충치가 생긴다거나, 배가 아프다거나 하는 말로 아이에게 조금씩 겁을 주기도 했다. 그 밖에도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면서 배도라지의 횟수를 줄여나갔다. 지금에야 배도라지 주스는 아이가 좋아하는 한낱 음료수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 우리에게 배도라지의 존재는 애증의 대상이었고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노력이 빛을 발하며,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아이는 보통의 아이처럼 감각을 받아들이고 처리할 줄 안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모든 감각방어는 일상에서 사라졌다. 아이에게 남들보다 예민한 촉수가 있어서 힘들었던 지난날, 그 지리멸렬하던 순간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굳이 떠올리며 글로 적은 건 어디선가 고통받고 있을 엄마와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이다.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눈물 흘렸던 지난날의 내가 가여워서, 어쩌면 더 열심히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여느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세상과 교류하는 소은이에게 고맙고 감사하며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아이와 엄마에게도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아이를 위한 꿀팁>
아이가 부모님 곁에서 음식 만들기를 함께 하면서 재료를 가지고 놀 수 있게 해 주세요.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엄마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아이의 마음이 편해지면서 엄마의 정서도 편안해지기 때문이에요. 물론 부엌이 어질러지거나 엄마가 신체적으로 피곤할 수는 있지만 아이와 음식 재료를 가지고 놀다 보면 아이가 호기심을 갖고 음식과 친숙해지면서 결과적으로는 엄마가 해준 요리를 잘 먹을 수도 있어요!
Photo by Harry Grout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