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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이 예민한 아이

시각방어에 대하여

by 강진경

소은이는 28개월 무렵, 어린이집에서 담임교사로부터 정서적으로 학대를 당한 뒤 하루아침에 감각을 조절하는 데 많은 문제가 생겼다. 아이는 매사에 불안해했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했다.


* 지난 글 참고(청각방어 이야기)

청각이 예민한 아이 (brunch.co.kr)


* 지난 글 참고(촉각방어 이야기)

촉각이 예민한 아이 (brunch.co.kr)


아이는 시끄러운 소음이 발생하면 귀를 막으며 괴로운 표정을 짓고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청각방어) 머리 감기나 목욕은커녕 손도 씻지 못하게 되었고,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했다.(촉각방어) 이 세상의 모든 자극이 아이에게는 두렵게 느껴지듯 했다. 아이는 밤마다 '무서워, 무서워.'를 외치며 눈을 꼭 감고 소리를 질렀고 우리 부부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지금에야 그 당시 아이에게 나타났던 현상이 감각방어이고, 감각통합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도대체 아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어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지금 감각통합에 대해 공부하고, 관련된 책을 읽으니 그때 아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든 비밀이 풀리면서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좀 더 아이를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아이는 자신이 어쩌지도 못하는 감각 문제로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예민한 아이 육아법은 따로 있다>의 저자 '나타샤 대니얼스'는 감각 문제는 아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이며 불안과 감각 처리 장애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했다. 즉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는 감각 처리 장애가 있을 확률이 높다고 보았다. 소은이는 타고난 기질이 예민했던 아이였는데 어린이집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아이의 불안감을 극대화시키고, 그것이 곧 뇌가 메시지를 감각기관에 전달하는 데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다. 감각 조절 문제는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는 감각자극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감각방어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 썼던 청각방어, 촉각방어에 이어 감각방어의 한 종류인 시각방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시각방어란 불빛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시각 자극에 대해 과민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시각자극에 의해 쉽게 주의가 산만해지며 밝은 배경에 있는 사물을 잘 쳐다보지 못한다. 또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증상을 보인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한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무렵, 밖에서 아이 친구 엄마를 우연히 만났는데 아이가 예전과 달리 친구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어린이집 사건이 있기 전에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낯선 사람도 아니고, 객관적으로 무섭게 느껴지는 사람도 아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따르며 놀던 친구 엄마에게 눈을 마주치지 못하다니. 나는 아이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때는 그저 아이가 많이 불안해서 그렇구나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아이는 시각에도 몹시 예민해져서 시각방어의 양상을 보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아이가 사람을 만나면 불안해하는 증상이 너무 심해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도 힘이 들었다. 길을 가다 잠깐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사고 나올 수도 없었다. 유모차를 밀고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는 경기를 일으키듯 울었다. 마치 무서운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공포에 떨었다. 그쯤 되자 나도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졌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비정상적으로 반응하는 아이를 케어하는 일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용기를 내어 빵집에 들어갔다가 아이가 기겁을 하고 우는 바람에 아이를 껴안고 쫓기듯 나온 적도 있었다. 빵집에서 빵을 사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것. 이렇게 사소한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시간들이 너무 힘에 겨웠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나 막막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 번은 조용하고 한적한 키즈카페를 대여해서 지인 가족들끼리 모임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은이가 좋아하는 또래와의 만남이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우리의 착각이었다. 그때 오랜만에 본 친구 아빠가 있었는데 소은이 그 아저씨를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 낯설어서 우는 것이겠지, 곧 나아지겠지 생각했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아이는 지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울었다. 결국 우리 가족만 키즈카페를 빠져나와 유모차로 산책을 하며 아이를 진정시켰던 기억이 난다.


아이는 그 후로도 한참을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들 사이에 공통점이라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사실 공통점도 없었다. 그것이 더 우리를 힘들게 했다. 어떠한 공통점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피하련만, 때로는 젊은 아저씨, 때로는 할아버지, 때로는 평범해 보이는 아주머니를 보고도 악을 쓰고 울며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나중에 한참 시간이 흐른 후, 해가 바뀌고 아이에게 그때 친구 아빠의 사진을 보여주며 왜 그렇게 울었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아저씨가 입은 검은색 옷이 무서웠다고 했다. 정말 그것 때문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추측하자면 그 당시 아이에게는 누군가를 대면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예민한 아이 잘 키우는 법>을 쓴 '최치현'교수는 오감이 예민한 아이는 작은 소리도 더 크게 인식하고 세상을 일반 화질이 아니라 풀 HD(초고화질)로 본다고 말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이가 그때 초고화질로 본 환경이 너무나 자극적이었던 게 아닐는지. 그 시간, 그 공간에서 아이를 불편하게 하는 어떤 것이 끊임없이 있었을 것이고, 아이는 그 자극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도망치기 위해 그렇게도 울었던 게 아닐까.


다섯 살이 된 지금 아이는 여전히 예민하지만 감각방어의 증후는 모두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 가정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소은이를 키우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어린이집 사건을 겪은 28개월부터 37개월까지 약 9개월 정도이다. 9개월 만에 내가 유방암을 진단받으며 직장을 휴직하면서 발작 수준으로 울던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기 시작했다. 암 수술을 하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도 나도 서서히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 가족은 너무 많은 것을 잃어야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제2의 소은이가 있다면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엄마의 몸과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아이를 도와주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를 잘 관찰하여 감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만일 감각 문제로 여겨진다면 망설이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위한 꿀팁>

1) 아이가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 혹시 시각방어는 아닌지 살펴보세요.

아이가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계속 시선을 피한다면 감각조절장애 중 하나인 시각방어일 수 있어요. 물론 낯가림이나 불안 증세일 수도 있지만요.


2) 시각이 예민한 아이를 위해 직사광선 차단,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는 피해 주세요.

시각에 민감한 아이들은 빛에 과민해서 선글라스를 쓰게 하거나 그늘에 머무는 등 햇빛을 피해 주는 게 좋아요. 또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이 아이를 당황시키고 속을 메스껍게 만들 수 있다고 하니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피해 주세요.


<엄마를 위한 꿀팁>

1) 감각 처리 장애만을 주제로 다룬 책들을 찾아보세요.

감각 처리 장애는 신호와 증상을 간략하게라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반복해서 언급하지만 제가 과거로 돌아가 이런 것들을 알았더라면 훨씬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을 거예요. 이런 개념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가의 여부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아이가 감각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감각통합'을 키워드로 하여 인터넷 검색도 해보시고, 자료도 많이 찾아보시면 좋겠어요.


2) 아이가 감각에 문제가 있다면 훈육으로 다스리려 하지 마세요.

어떤 아이는 부모가 아이의 감각 문제를 이해하고 알고 있기만 해도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고 해요. 아이가 일부러 고집을 피우거나 반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감각 문제라는 것을 부모가 인지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것을 모르고 아이를 훈육하게 되면 문제가 더 악화될 수 있어요. 감각통합 문제는 접근 방법 자체를 달리 해야 합니다.



Photo by Karl Fredrickson on Unsplash



* 지난번 촉각이 예민한 아이 편에 댓글을 달아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제가 그때 여행중이라 답글을 달지 못했는데 댓글이 지워져서 따로 소통할 방법이 없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그때 공감해주시고, 긴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숨에 모든 글을 읽으시고, 다른 글도 기다리신다는 그 말씀에 힘을 얻어 한 달만에 다시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예민한 아이는 흔하지 않다보니 한 분 한 분의 공감이 무엇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예민한 아이를 두신 엄마들과 자주 소통하고 싶어요. 주저하지 마시고 언제든 댓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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