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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Sep 12. 2022

엄마, 나 사실 아가 때부터 하늘을 날고 싶었어.

소은이의 소원

 S: 엄마, 우리가 하늘을 날고 있어!"


 비행기 창가석에 앉은 다섯 살 소은이는 창 밖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소은이가 비행기를 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더 어릴 때 비행기를 탄 기억은 아이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하긴, 그때는 너무 어렸으니까. 3년 전 두 돌이 막 지났을 때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를 간 적 있지만 그 역시 사진으로 남아있을 뿐, 아이에게는 비행기도, 제주도도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지금 비행기를 탄 기억도, 나중에는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S: 엄마, 저기 우리 아파트도 보여. 우리 아파트 안녕!


 창밖으로 도시가 내려다보였다. 사람도, 건물도, 자동차도, 모두 작은 장난감처럼 작게 보였다. 아이는 그 모습이 신기해서 한참을 그렇게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내 비행기는 구름 위로 올라왔고, 이번에는 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나라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S: 우아 진짜 신기하다. 나 구름 만져보고 싶어. 부들부들할 거야. 이건 호랑이! 이건 양! 구름이 동물 모양이야. 이건 기린 같은데?


  소은이의 말대로 구름들은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은 곧 마법의 주문이 되어, 구름이 동물 모양으로 변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S: 나 구름 먹고 싶어, 냠냠냠. 먹었다! 음 맛있어. 달콤해.


 이번에 소은이가 구름을 먹는 시늉을 하자, 구름은 맛있는 솜사탕으로 변했다. 생각해보니, 비행기가 출발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소은이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감탄하고 있었다.


 S: 엄마, 나 사실 아가 때부터 하늘을 날고 싶었어.


 아이의 눈은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 반짝였다. 아이의 고백에 작년 추석 날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던 장면이 떠올랐다. 소은이의 소원은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가 되는 것이었다.


 '그럼, 오늘은 소은이의 소원이 이루어진 행복한 날이겠구나.' 나는 소은이가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며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마지막까지 고민이 되던 여행이었다. 너무 바쁜 일정 속에 아무런 준비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떠난 여행이었지만, 비행기를 탄 것만으로도 아이의 소원 이루어졌으니 그걸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소은이가 행복해하는 사이 나 역시 처음 비행기를 타는 사람 마냥 한참 동안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았다. 암 진단 후 처음 타보는 비행기였다. 아프고 나서 처음 올라온 하늘 위는 내게 새로운 기분이 들게 했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구름 위를 날면서 나는 천국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왜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하늘나라로 간다고 생각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막상 하늘 위로 올라오면 눈에 보이는 것은 구름뿐인데도, 왜 사람들은 하늘나라를 꿈꾸는 것일까? 정답은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그건 아마 하늘 위가 너무 예뻐서, 세상에 존재하는 풍경 중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그 아쉬움을 달래려고, 하늘나라를 만들어낸 건지도 모른다.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지만, 손에 닿을 수 없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그곳. 살아있는 사람은 갈 수 없는 세계.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건 아닐까.


 창 밖 너머로 펼쳐진 하늘나라를 보면서, 몽글몽글 피어난 뭉게구름을 바라보면서,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하늘나라는 너무 아름답지만, 아주 먼 훗날, 최대한 나중에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은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소은이의 소원이 이루어진 날, 나는 소은이 곁에서 오래오래 살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하늘 위에 올라와서 빈 소원이니, 하느님께도 더 크게 들리지 않았을까? 소은이의 소원처럼, 내 소원도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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