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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Sep 13. 2022

괜찮아. 꽃이 시들어 버려도 엄마 마음에 있어.

꼬마 시인의 노래

M : 빨리 와. 소은아.


 제주도 숙소 앞. 차를 타지 않고 딴청을 부리고 있는 소은이. 얼른 나가야 하는데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나는 약간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소은이에게 빨리 올 것을 재촉했다.  뛰어 온 아이의 손에는 이 한 송이 들려있었다.


 S: 예쁜 꽃이 있어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었어.

 

 엄마에게 줄 꽃을 따느라 그랬구나.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에게 짜증을 부린 것이 미안했다.


 M: 엄마가 소은이 마음 몰라줘서 미안해.  정말 예쁜 꽃이네. 그런데 이렇게 꽃을 꺾으면 바로 시들어 버릴 텐데 어쩌지?


 S: 괜찮아. 꽃이 시들어 버려도 엄마 마음에 있.

  

  마음이 뭉클했다. 어른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보는 소은이. 아이는 예쁜 것을 보면 엄마에게 주고 싶고, 그 대상이 사라지더라도 엄마의 마음에 감정이 전해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이의 그 마음이 고맙고 대견했다.


 S: 엄마는 예뻐. 꽃도 예뻐. 이거 민들레꽃이야. 민들레반 선생님 보고 싶다.


 소은이는 유치원에서 민들레반이었다. 민들레꽃을 보니 담임 선생님이 생각이 났나 보다. 아이가 담임 선생님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건 반가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것이니까.


 민들레반 선생님은 예쁘고 상냥한 20대 아가씨 선생님이었다. 앳된 외모에 아담한 키, 첫 만남에서 경력이 많지 않아 보이는 선생님의 모습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초임 교사 시절, 나를 바라보는 학부모님들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다행히 아이는 선생님을 잘 따랐고, 별 탈 없이 1학기가 끝났다. 첫 어린이집에서 담임 선생님을 잘못 만나고,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오직 하나, 담임 선생님의 인품과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M: 민들레반 선생님 보고 싶구나? 선생님도 소은이가 많이 보고 싶으실 거야. 우리 여름 방학 끝나면 다시 유치원 가서 선생님이랑 신나게 놀자.

 S: 응! 러자.


 나는 다시 한번 평온한 우리의 일상에 감사하며, 민들레반 선생님께도 고마웠다. 유치원 생활을 잘하고 있는 아이에게도.


 차를 타고 가면 바깥 풍경을 보며 아이는 노랫말을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소은이의 입에서 노래가 되어 나왔다.


, 너는 왜 여기 서있는 거냐.

꽃아, 너는 왜 시들어버리냐.

책아, 너는 왜 찢어지지 않는 거냐.

차야, 너는 왜 움직이지 않는 거냐.

마트야, 너는 왜 계산을 안 하는 것이냐.

열매야, 너는 왜 터지 것이냐.

물아, 너는 쑥쑥 안 자라는 것이냐.

불아, 너는  죽는 것이냐.


S: 엄마, 불은 왜 안 죽어?

M: 물을 만나면 죽지. 물이랑 만나지 않으면 계속 불타지.

S: 으, 무서워.


 소은이는 마치 시조를 읊는 것처럼, 정확하게 비슷한 문장 구조를 반복했다. 눈으로 대상을 보고, 그 대상의 특징을 파악해서 순식간에 말로 표현해내는 아이의 능력이 놀라웠다. 중간에 의문이 생기면 잠시 읊는 것을 멈추고 내게 질문을 하고, 궁금증이 해소되면 다시 노래를 이어나갔다.


신호등아, 너는 왜 사람들을 못 가게 하냐.

동그라미야, 너는 바다에 안 가는 것이냐.

해파리야, 너는 사람들을 물고 가냐.

꽃게야, 너는 사람들을 집게로 물고 가냐.


 그렇게 꼬마 시인의 시는 노래가 되어 차 안에 울려 퍼졌다. 멀리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지평선이 보이고, 바람은 시원하고, 신이 난 아이의 웃음과 노랫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번 제주도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창문 너머로 바닷바람이 들어와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릴 때마다 웃음을 터트렸다.


 여행이 주는 기쁨. 일상을 잠시 벗어나 느끼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은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이제 사진과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보석 같은 시간들을 곱씹으며 그때의 추억을 글로 남겨본다. 아이가 준 민들레꽃은 이미 시들어 버렸지만,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한 그 예쁜 마음은 영원히 내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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