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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Sep 05. 2022

엄마, 사람들 앞에서 나 모른 척 해.

아가씨가 되고 싶은 다섯 살 아이

 소은이 손을 잡고 동네를 걸어가고 있는데 맞은편에 우리 아파트 단지에 있는 초등학교가 보였다.


S: 엄마, 저기 엄마 학교야?

M: 아니, 저긴 나중에 소은이가 다닐 초등학교야. 엄마 학교는 여기서 멀어.

S: 엄마, 그럼 학교 신청했어?


 다섯 살 꼬맹이는 벌써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에 엄마에게 학교를 신청했느냐 물었다. 내게 있어 학교란 그저 당연히 때가 되면 가는 곳이었는데, 소은이는 학교도 예약을 하고, 신청을 해야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긴, 초등학교 취학통지서가 오면 예비소집일에 참석하고, 학교에 가겠다고 통지서를 제출해야 하니, 따지고 보면 소은이 말이 맞다.


M: 아니, 지금 당장 가는 건 아니고, 나중에 소은이가 좀 더 크면 학교에 가는 거야. 지금은 유치원에 다녀야지. 몇 년 후에 소은이가 학교 갈 나이가 되면 그때 엄마가 꼭 신청할게.


 그러자 소은이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S: 엄마, 나 사실 지금도 학교에 다녀! 이제 유치원에서 여름학교 끝나고 가을 학교가 시작되는걸?


 그러고 보니 소은이 말이 또 맞았다. 소은이의 유치원에서는 봄 학교, 여름 학교, 가을 학교, 겨울 학교라는 이름으로 계절별로 프로젝트 수업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유치원 이름도 어린이 자유학교이지 않은가. 나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소은이는 이미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학교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아이에게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학교란 일정한 목적ㆍ교과 과정ㆍ설비ㆍ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을 말한다.) 심지어 유치원 입학 관리 시스템의 이름도 '처음 학교로'이지 않은가.


M: 그러네, 소은이 말이 맞네. 소은이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는 거구나!


 나는 이런 야무진 생각을 하는 아이가 기특해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S: 엄마, 나 아가씨 되는 거 얼마 안 남았지? 나는 진짜 아가씨가 되고 싶거든.


 이제는 한 술 더 떠서 아가씨라니! 나는 소은이 입에서 언니도 아니고 이제는 아가씨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에 새삼 놀랐다.


M: 정말? 소은이는 왜 벌써 아가씨가 되고 싶어?

S: 아가씨는 예쁘잖아. 난 빨리 아가씨가 되고 싶어.


 아직 어린이라고 부르기에도 어린 나이 다섯 살이 벌써 아가씨가 되고 싶단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손을 탁 놓더니 앞장서서 혼자 걷기 시작했다.


M: 소은아, 엄마 손 잡고 가야지.

S: 아니야, 엄마. 사람들 앞에서 나 모른 척 해. 나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단 말이야.

M: 왜? 왜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S: 그럼 사람들이 "어머~ 저거 어린데도 혼자가 네."하고 놀랄 거 아니야.


 소은이의 마음속에는 벌써 독립의 욕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에게서 자립하여 혼자 뭔가를 하고 싶고, 혼자 있어도 괜찮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나는 소은이가 주도성 있는 아이로, 독립심과 자립심이 있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고 줄곧 생각했지만 갑작스러운 아이의 말에 살짝 놀랐다.


M: 그래, 알았어. 모른 척할게. 하지만 길을 건널 때는 엄마 손을 잡고 가야 해.

S: 왜?

M: 길을 건널 때는 갑자기 차가 올 수도 있고, 위험하니까 엄마가 아직은 소은이를 보호해줘야 하거든.

S: 응, 알겠어. 그럼 길 건널 때만 손 잡는 거다.


 이렇게 소은이는 나보다 앞장서서 혼자 걷기 시작했다. 당당하고, 씩씩하게 혼자 걸어가는 소은이를 보며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정말 저 길을 혼자서도 걸을 날이 오겠구나 싶어 애틋하기도 했다. 소은이는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다 횡단보도가 나오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아직은 엄마가 필요한 나이. 그래도 아이에게 아직은 내 손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문득 안도감이 들었다. 고사리 같은 소은이의 손을 잡으며 길을 건넜다. 소은이의 손은 작지만 따뜻했다. 언젠가 소은이의 손이 내 손처럼 커질 날이 오겠지. 내 손을 잡지 않아도 혼자 횡단보도를 건너고, 혼자서도 어디든 갈 수 있는 나이가 되겠지. 그날이 오면 내 마음은 어떨까? '이제 내가 없어도 되겠구나.'하고 조금은 안심이 될까 아니면 벌써 그렇게 커버린 아이를 보며 서운한 마음이 앞설까.  


 길을 건넌 후 다시 손을 놓고 앞서 걸어가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2년 반이면 소은이도 초등학생이 되는구나. 늘 그날이 멀게 느껴졌었는데 이날 처음으로 그날이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우리에게 주어진 유년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꼬꼬마 유년 시절을 더 행복하고, 따뜻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아이가 먼 훗날 이때를 기억할 때,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더 많이 안아주고 아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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