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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Sep 04. 2022

엄마, 저 아줌마 마스크 안 썼어!

엄마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아이, 아이의 도덕성 발달에 대하여.  


 저기다가 차 세우면 안 되는데!

 담배 피우면 안 되는데!

 마스크 안 쓰면 안 되는데!


 엄마, 저 아저씨 담배 피워!

 엄마, 저 아줌마 마스크 안 썼어!

 누가 여기다 차를 세웠어!


 길을 나서면 소은이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이어진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한참 규칙과 규범에 대해 인식하고,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는 시기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8개월 전, 네 돌 무렵의 소은이는 한참 그런 모습을 보였다. 만 4세. 타인을 인식해 가는 시기. 아직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할 때이지만 타인을 인식해가면서 사회적 기술을 배워가고, 규칙과 규범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지키려고 하는 모습이 종종 나타났다. 


 그래서일까, 길을 가다가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를 보면 아주 큰 목소리로 "엄마, 저 아저씨 담배 피워!"라고 외쳐 나를 당황하게 하고 했다. 또 길을 가다 누가 마스크를 안 쓰고 지나가면 그 사람이 다 들릴 정도로 크게 "엄마, 저 아줌마 마스크 안 썼어!"라고 일러주기 일쑤. 지금은 실외 마스크 착용이 필수는 아니지만, 그때는 실외에서도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했기에 소은이의 말을 듣고, 멋쩍게 마스크를 고쳐 쓰는 어른들도 있었다. 


 한 번은 소은이와 함께 차를 타고 나가는 데 길에 정차된 차 때문에 빠져나가기 힘든 적이 있었다. 운전을 하고 있던 내가 이런 곳에 차를 세우면 안 된다고 혼잣말로 투덜대는 걸 듣더니, 그 후로 소은이는 길에 불법 주차된 차만 보면 누가 여기다 차를 세웠냐는 둥, 저기다가 차를 세우면 안 된다고 참견을 하였다. 


 나는 그런 소은이가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 소은이 앞에서는 말을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소은이는 엄마인 내가 바라보는 색깔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가 얘기하는 대로 세상을 인식했다. 생각해보면 길을 가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보고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 사람을 피했고, 마스크를 안 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내가 꼭 소은이의 카메라 렌즈가 된 기분이었다. 빨간색 렌즈를 끼우면, 아이는 빨갛게 세상을 보고, 파란색 렌즈를 끼우면, 아이는 파란색으로 세상을 보았다. 소은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는 엄마나 아빠, 양육자가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같은 색 렌즈를 대고 세상을 바라본다. 마치 눈앞에 색색깔 셀로판지를 대고, 색깔을 바꿀 때마다 세상이 다른 색깔이 바뀌는 것처럼. 


 앞에 예로 든 것은 몇 가지 눈에 보이는 행동에 대한 평가이지만,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 등.. 무수히 많은 것들을 아이는 부모를 통해 배운다. 우리는 어쩌면 알게 모르게, 늘 아이에게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었던 셈.


 나는 소은이가 "이건 안 돼, 저건 안 돼."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오래전 교육학 시간에 배웠던 유아의 도덕성 발달이론이 생각났다. 교육심리학에서는 도덕성 발달을 위해서 인지적 성숙과 사회적 경험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아이가 만 네 살 정도가 되면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규칙과 규범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가 온다. 만 네 살이면 어느 정도 인지적으로 성숙하여 도덕성 발달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연령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도덕성은 한순간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부모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통해 아이가 보고 자라는 것이니, 이쯤 되면 부모의 양쪽 어깨가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소은이가 공부를 잘하는 아이, 예체능을 잘하는 아이로 자라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도덕적인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소은이가 바르고 선하게 자랄 수 있도록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소은이 옆을 지키면서 소은이에게 모범이 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소은이가 어둡고, 깜깜한 렌즈가 아닌 밝고 환한 렌즈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내가 반짝반짝 깨끗한 렌즈가 되어 소은이의 세상을 아름답게 비출 수 있기를 소망한다.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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