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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Jun 20. 2022

엄마, 이거 양떼구름 아니야?

엄마도, 아이도 행복한 시간이란.

S: 엄마, 이거 양떼구름 아니야?

M:맞아. 양이 떼를 지어 있는 거 같지? 그래서 양떼구름이야.


 소은이와 놀이터에서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쩍 하늘에 관심이 많아진 소은이가 구름이 펼쳐진 하늘을 보며 아는 체를 한다. 나는 다섯 살 딸아이의 손을 잡고 하늘을 한참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고, 서쪽 편으로는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지 구름이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새가 우리 앞에 앉아 삐리 삐리 노래를 불러주었다. 졸졸졸 공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보며 아이는 조금만 더 놀고 가자고 졸라댄다. 새가 노래하는 것도 한참을 감상하고 비행기가 머리 위를 지나가는 것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다. 어떻게든 더 놀고 들어가고 싶은 아이는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머무는 곳마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이미 집에 들어간 지 오래되었건만, 소은이에게는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이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어른 걸음으로 10분이면 올 거리인데 아이의 발에는 느리게 걷는 요술 신발이라도 달려 있는 걸까.


 그렇게 더 놀고 싶어 안간힘을 쓰고 있던 소은이의 눈에 늘 닫혀있던 초등학교 문이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S: 엄마, 우리 저기 들어가면 안 돼?

 소은이는 내 눈치를 살피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M: 그럼, 우리 저기만 들어갔다가 바로 집에 가는 거야.

S: 야호! 신난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 초등학교로 들어가 보았다. 우리가 지날 때는 항상 닫혀있던 후문이 웬일로 열려 있었다. 후문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나도 처음이라 슬며시 궁금증이 일었다. 수박, 가지, 고추가 심어진 텃밭을 지나 부속 병설 유치원이 보이고, 유치원 아이들을 위한 작은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가 보였다. 구름사다리가 있는 모래 운동장도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낯익은 풍경들에 어릴 적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생각이 났다.

 

 나는 국민학교로 입학하여 초등학교로 졸업한 첫 해 졸업생인데 어릴 때 이사를 많이 다녔던 탓에 총 세 군데의 학교를 다녔다. 그중 가장 오래 다녔던 학교가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린 시절, 꼬꼬마였던 나에게 학교의 운동장은 얼마나 넓었는지. 또, 학교까지 가는 길은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고개를 세 번은 넘고, 슈퍼마켓과 운동장을 몇 개는 지나야 도착했던 학교.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나도 소은이처럼 요술 신발을 신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른에게는 가까운 거리도 아이에게는 한참을 가야 나오는 신기한 마법의 길.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때 학교를 오가며 슈퍼마켓에서 팔던 50원짜리 땅콩 캐러멜을 사 먹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추억 속의 땅콩 캐러멜


 서른아홉이 되어 보니, 그 시설 인생의 낙이었던 땅콩 캐러멜이 지금은 순간의 즐거움도 선사할 수 없을 만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아이의 눈에서 바라보는 행복이란 이렇게도 소소하고, 작은데. 어른이 되면 왜 행복의 주머니가 산더미처럼 커져서 그 주머니를 가득 채워야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나는 추억의 땅콩 캐러멜을 머릿속에 그리며 소은이를 바라보았다. 소은이에게는 지금 엄마가 주는 마이쮸 한 개가 땅콩 캐러멜처럼 행복을 안겨 주는 선물일 수도 있겠구나. 마이쮸 하나로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앞으로 캐러멜 하나에 그렇게 인색하게 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 소은아, 여기가 소은이가 좀 더 커서 유치원을 졸업하면 다니게 될 초등학교야.


 나는 초등학교 이곳저곳 울 둘러보며 아이에게 학교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때 아직 하교하지 않은 언니, 오빠들이 보였다.


S: 엄마. 언니, 오빠들은 책가방이 크네. 내 유치원 가방은 작은데.

M: 맞아. 소은이 가방은 작은데 언니, 오빠 가방은 크지? 언니, 오빠들은 큰 가방에 공부할 것을 들고 다니면서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거야. 소은이도 나중에 언니, 오빠처럼 크면 저렇게 큰 가방을 메고 다닐 거야.


 나는 아이가 책가방을 고 학교를 다닐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찼다. 처음 암을 진단받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을 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보고 싶어 얼마나 울었던가. 소은이의 초등학교 입학까지는 아직 2년 반이란 시간이 더 남긴 했지만 어느새 아이도 자라 그럴 날이 올 거라 생각하니 여러 가지 마음이 교차하였다. 빨리 그날이 왔으면 싶다가도, 아이와 더 오래 유년 시간을 함께 있고 싶다. 그러다  나는 지금 과연 잘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문득문득 밀려온다.


 아이에게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게 해주고 싶은데, 나는 얼마만큼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유치원을 다니며 아이가 기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마와 오롯이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그 시간을 더 알차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동안 아이와 나의 시간은 반비례 그래프의 곡선을 그린다고 생각했었다.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쓰는 만큼, 나를 위한 시간은 줄어든다고 여겼다. 아이와 놀아주면, 그만큼 나의 자유 시간은 줄어드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 전제부터가 어찌 보면 잘못된 것 아닐까. 아이와 시간을 보낼수록 나의 시간을 뺏기는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의 만족감도 높아지고, 아이와의 사랑도 커진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 아이와 보내는 그 시간이 결코 아깝지도, 힘들지도 않을 텐데.


 오늘부터 아이의 발걸음에 맞추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며 아이와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소은이의 요술 신발에 맞추어 나도 느리게 걷고, 소은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나도 자연을 감상하며 유유자적 공원을 거닐어야지. 아이가 행복하려면 결국 부모가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가 행복하려면 결국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부모는 아이와 놀아주는 게 아니라, 부모도 아이와 노는 것이라고, 아이에게 희생하는 게 아니라 부모도 함께 그 순간을 즐기며 사는 것이라고.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오늘은 유치원에 다녀온 소은이와 어떻게 재미있게 놀까 설레고 기대가 된다. 늘 짧게만 느껴지던 소은이가 없는 지금 이 시간도 빨리 간다고 아깝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소은이가 없는 시간은 최대한 내 할 일을 하고, 소은이와 함께 할 땐 아이와 신나게 놀아야지. 그게 엄마도, 아이도 행복한 시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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