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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

글쓰기의 본질

by 강진경

이 브런치 북은 책을 쓰고 싶은 독자분들께 책 쓰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하지만 책 쓰기는 글쓰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글쓰기에 대한 성찰 없이 단순히 책 쓰기의 기술만을 전달하는 책이 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책을 쓰기 위한 과정과 투고의 노하우, 책을 펴내는 기술은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인간이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사유 없이 단순히 방법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것은 금방 허물어질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책을 쓰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왜 글을 쓸 것인가.’하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결국 책 쓰기의 기본은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기획하고, 다듬어서 나의 글을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낼 것인지는 그다음 문제이다. 앞에서 ‘왜 책을 써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인간은 왜 글을 쓰는가?’의 질문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는 인간이 왜 글을 쓰는지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좀 더 깊게 얘기해보고자 한다.


인간은 왜 글을 쓰는가? 바쁜 현대인에게 글쓰기 말고도 할 일은 정말 많다. 그런데 소위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왜 부족한 시간에 틈을 내어 글을 쓰려고 하는 걸까. 요리를 하면 맛있는 음식이 생기고, 운동을 하면 몸이 건강해지고, 직장에 나가 일을 하면 수입이 생긴다. 그러면 글쓰기는 나에게 어떤 이로움을 줄까? 글쓰기가 취미를 뛰어넘어 삶 자체가 되어버린 작가들은 과연 글을 쓰며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동물 농장」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조지 오웰은 그의 대표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을 쓰는 동기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순전한 이기심. 둘째, 미학적 열정. 셋째, 역사적 충동. 넷째, 정치적 목적

순전한 이기심은 쉽게 말하면 똑똑해 보이고 싶고,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욕구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기심이란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허영심.’‘자기중심적’ 패턴을 말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대부분의 사람들, 절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으며 대부분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 야심을 버리고(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다.)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작가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그러나 끝까지 자기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는 완고하고 재능이 뛰어난 소수가 존재하는데 작가도 그 부류에 속한다. 진지한 작가는 대체로 기자보다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지만 돈에 대한 관심은 덜하다고 할 것이다.’


정말 솔직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반대로 ‘나는 허영심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거나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나는 오로지 다른 사람만을 위해 글을 쓴다.’라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것은 본심을 숨긴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글은 일차적으로는 자신을 위해 쓰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이 말하는 이기심이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남을 위해 꾸역꾸역 사는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직시하고 글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해나가는 것. 어찌 보면 여기서 말하는 순전한 이기심은 일종에 자아실현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인간에게는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 개발해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자신의 내면을 정제된 글로 쓰는 행위야말로 자아실현의 정점일 테니까.


조지 오웰이 두 번째로 언급한 미학적 열정이란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이나 낱말의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미학적 동기가 약한 작가도 많지만 소책자나 교과서를 쓰는 작가라고 해도 매력을 느끼는 소중한 단어나 구절이 있을 것이라 했다. 심지어 철도 안내 책자 수준만 넘으면 그 어떤 책도 미학적 생각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그의 말에 나는 매료되었다. 글을 읽고 쓰다 보면 좋은 글이 주는 단단함과 즐거움이 존재한다. 또 소중하고 놓쳐서는 안 된다 싶은 경험을 함께 나누려는 욕망 또한 미학적 열정에 포함된다고 하니, 순전한 이기심에 이어 미학적 열정 또한 글을 쓰는 커다란 동력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역사적 충동이란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짜 사실을 찾아서 나중을 위해 저장하려는 욕구이다. 쉽게 말하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SNS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어쩌면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역사적 충동에 의하여 일상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자신의 일기장이나 노트북에 글을 썼다면, 요즘은 블로그와 브런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글을 써서 공유하는 다양한 채널이 많이 늘어나면서 꼭 작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런 동기로 글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넷째, 정치적 목적이란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이라는 단어는 넓은 의미를 갖는다. 조지 오웰은 예술은 정치와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도 정치적 태도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진정 자유롭지 않다고 보았다. 시대를 반영하는 글을 쓰는 것도 작가의 몫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조지 오웰의 네 번째 동기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지 오웰의 이러한 태도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동기를 생각해보게 하고, 나아가 우리에게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결국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상황에 따라 앞에서 살펴본 동기가 다양하게 작용하면서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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