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쓸까?
내가 글을 쓰는 네 가지 이유
집안일은 산더미 같이 쌓여있고, 하루 두 시간은 꼬박 걸어야 '만 보'를 채울 수 있고, 다섯 살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어야 하고,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모자란데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 걸까. 영화나 TV 오락 프로는 못 본 지 오래이고, 여가 시간이라고는 없는 생활이 반복되고 있다. 일상에서 틈만 나면 글쓰기만 하고 있으니 때로는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든다. 언제까지, 얼마나 글을 써야 이 욕구가 충족이 될까?
어릴 때 누군가 내게 취미를 물어보면 나는 두 가지를 답했다. 책 읽기 또는 글 쓰기. 요리가 취미라면 가족들이 행복할 테고, 운동이 취미라면 몸이 건강해질 텐데 글쓰기는 나에게 어떤 이로움을 줄까? 심지어 글쓰기가 취미를 뛰어넘어 내게 삶 자체가 되어버린 지금, 과연 글을 쓰며 나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미치자 나는 대체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진지하게 의문이 들었다. 글쓰기를 하면 좋은 점은 정말 많다. 늘 그렇듯, 쓰다 보면 어느새 답이 도출되기 때문에 오늘은 내가 글 쓰는 이유에 대해 글을 써 보기로 했다.
첫 번째, 글은 나를 치유한다. 내가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는 글을 쓰는 것이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처음 글쓰기가 시작된 것은 암을 진단받고 살아남기 위함이었다. 암이 내 몸을 갉아먹고 있단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내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떨쳐 버리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글을 쓰는 일이었다. 글을 쓰면 글을 쓰는 행위에 집중하면서 마음이 평온해졌고, 생각이 정돈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머릿속의 생각이 글자가 되어 눈앞에 나타나면서 생각은 더욱 명확해졌다. 글을 쓰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를 더욱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었다. 부정적인 마음이 스며들 여지가 없었고,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글쓰기는 이렇게 마음을 치유하는 동시에 미래를 꿈꾸게 만들었다.
나의 경우는 조금 특수한 상황이었지만 보통 사람에게 글쓰기는 나를 돌아보게 하고,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가다듬는 것과 같기에 글쓰기에는 아픈 마음을 낫게 하고, 반추하는 힘이 있다.
이제 일상을 회복한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쓰면서 몰랐던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고, 글을 쓰며 삶을 더 깊이 있게 통찰하게 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알게 된다.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들도 글을 쓰는 사람이 그 안에 의미를 불어넣는 순간 달라진다는 것을.
두 번째, 글은 나의 삶을 기록한다. 암 투병을 하며 내 안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과 내가 겪은 경험들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쓰지 않으면 기억은 언젠가 휘발되어 날아가버리니까. 지금 내 마음이 어떠한지, 내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적어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은 곧 옅어지고 희미해질 거라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몇 해 전 아이가 생기지 않아 1년 정도의 시간을 난임 시술을 받으며 고생한 적이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시험관 시술을 받는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힘들고 괴로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문득 내가 시험관을 몇 번 했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그걸 잊을 수가 있을까? 그저 막연하게 힘들었다는 기억만 남을 뿐, 그 많은 시술을 하고도 난임에 대해 할 말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제야 난임 일기를 적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되었다. 비록 힘든 기억이지만 그 순간의 기록을 글로 영원히 남겼더라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아이를 키우며 힘든 순간들이 올 때마다 들여다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이렇게 아이를 간절히 바랐구나.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아이가 지금 내 앞에 있구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당시의 심경을 담은 글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육아 에세이를 쓰고 있는 것도, 아이와의 소중한 일상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아이의 사랑스러운 어린 시절은 너무 빨리 흘러버리기 마련이니까. 삶의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두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거니와, 사진에는 담을 수 없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글로는 모두 남겨둘 수 있다. 나의 삶을 박제해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로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록해두는 것이다.
세 번째, 글로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다. 글을 쓰면 나의 경험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기쁨을 얻게 된다. 나를 치유하고, 성찰하는 글쓰기는 혼자 일기장에도 쓸 수 있지만 내 글이 타인을 위한 글쓰기가 되려면 나의 글을 누군가 읽어주어야 한다. 비로소 내가 쓴 글이 독자와 만나는 지점이다. 누군가 나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나 역시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작가와의 서랍에 글을 쓰고 발행하지 않았다. 글은 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고, 그 글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을 속속들이 공개하는 것과 다름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마침 암을 진단받고 내게 연락을 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나는 그분을 위해 내가 그동안 써온 서랍 속의 글들을 세상에 내보였다. 그리고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내 글이 도움이 된다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글을 발행할 용기가 생겼다. 그 후 차곡차곡 글들이 쌓여가며 더 많은 독자와 소통하기 시작했고, 나를 위해 쓴 글이 타인을 위한 글쓰기가 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되었다. 나의 삶과 경험이 타인에게 공감과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도 글을 쓰게 하는 큰 기쁨이고 원동력이다.
마지막으로, 글쓰기는 오늘도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게 한다. 글을 쓰면 하루하루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느껴지고, 오늘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생긴다. 활자가 갖는 영원성. 다른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없어져도 내가 오늘 쓴 글은 일부러 지우지 않는 이상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얼마나 멋지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나는 먼 훗날 죽으면 내가 쓴 글을 남기고 싶다. 귀여운 할머니가 되어 100살까지 사는 것이 목표이니, 적어도 60년은 더 살면서 열심히 글을 써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