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의 힘
학교 입학 설명회가 있던 날, 아침부터 학교는 손님맞이로 분주했다. 설명회 장소가 내가 담당하는 국어교과교실이다 보니 청소 상태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전날부터 아이들과 대청소를 하며 여러 번 바닥을 쓸고 닦았다. 창틀을 닦고, 블라인드에 쌓인 먼지까지 닦았다. 학부모님들을 위해 준비한 다과를 정성껏 세팅하며,‘우리 학교처럼 열과 성을 다해 학부모와 학생을 맞이하는 곳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설명회 시간이 되고, 학부모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나와 동료 선생님은 입구에서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준비한 선물을 전하며 자리까지 친절히 안내했다. 이건 15년 동안 몸에 익은 습관이었다. 학생과 학부모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그건 어느새 나의 교직 철학이자 삶의 태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모든 학교가 이렇게 아이와 학부모를 정성껏 맞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설명회가 시작되고, 나는 동료 선생님과 복도에 서 있었다. 교실 안에서는 아이들이 음악 선생님과 함께 플루트 연주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진심으로 ‘우리 학교에 오는 학생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학생이 두 가지 악기를 배우는 학교, 예술중점학교로서 예술교육이 일상인 곳. 나는 청소년 시절에 악기를 배우며 자란 아이들이 음악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잘 알고 있었다.
비단 음악만이 아니었다. 우리 학교는 예술, 체육, 진로, 학력 향상 프로그램까지 안 하는 게 없었다. 교사로서, 그리고 부모로서도 ‘내 아이를 보내고 싶은 학교’였다. 나는 교실 안의 학부모님들을 바라보다가 동료 선생님께 농담처럼 말했다.
“선생님, 저는 우리 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워요. 마음 같아선 제가 잠시 다른 학교로 옮기고, 우리 딸을 여기 보내고 싶어요.”
중학교 교사는 자녀와 한 학교에 다닐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농담이었지만, 그 말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만큼 나는 이 학교를 사랑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설명회가 끝나가고, 교무실로 돌아가려는데 함께 있던 20대 중반의 젊은 동료 선생님이 조심스레 나를 따라 나왔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네? 무슨 말씀이요?"
선생님의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에 바삐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순간 긴장이 되었다.
“사실 아까부터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이 없으면 우리 00 중학교는 더 이상 00 중학교가 아니에요. 선생님은 학교의 일부예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떠나시면, 우리 학교는 지금의 그 학교가 아닐 거예요.”
수줍음 많은 그녀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용기를 내어 말했다. 단단하고 조용한 말투 속에 진심이 묻어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내가 학교의 일부라니. 이보다 더 근사한 칭찬이 있을까.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나의 존재 이유였다.
15년 동안 몸담은 학교에서 동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인정받는 듯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비록 임신과 출산, 그리고 암 진단으로 몇 해의 휴직을 했지만 이곳은 내 젊은 날의 대부분이 녹아 있는 곳이다. 교실의 빛바랜 블라인드, 모서리가 닳은 책장,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모두 내 삶의 일부이자 나의 기록이었다.‘학교의 일부’라는 그 말은 내가 어떤 교사가 되고 싶었는지를 다시 일깨워주었다.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조용히 곁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사람.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여전히 이 학교의 일부이고, 이 자리를 지키는 한 교사로서 오늘도 교단에 선다. 아픔이 나를 잠시 멈추게 했을 뿐, 나는 다시 걸어가고 있다. 암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나는 여러 번 멈추고 싶었고, 때론 이 길이 맞는 걸까 고민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아이들의 눈빛과, 동료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내게 속 마음을 말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긴 추석 연휴가 저물고, 월요일이 오면 언제나처럼 다시 바쁜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아이들 앞에 설 것이다. 이 학교의 한 부분으로, 그리고 '나'라는 온전한 한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