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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Dec 01. 2021

아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아빠가 병원 진료를 보고 온 날, 저녁을 먹 소은이가 아빠에게 물었다.


S: 아빠 괜찮아? 아빠도 주사 맞았어?

D: 응, 아빠 괜찮아.

S: 아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아빠도 엄마처럼 아플까 봐. 내가 얼마나 걱정했다고.


 45개월, 이제 고작 네 살인데 못하는 말이 없다. 하루 종일 아빠와 떨어져 있던 아이의 속마음은 저랬구나. 꼬맹이가 벌써 부모 걱정을 하다니 신통방통하면서도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린이집 끝나고 밖에서 엄마와 몇 시간을 실컷 놀면서, 아빠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길래 아이가 아빠 걱정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었다. 그런데 아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속이 깊었. 게다가 '엄마처럼 아플까 봐.'라니. 그 말이 콕콕 내 마음을 후벼 팠다. 아이는 엄마의 병이 어떤 것인지는 가늠하지 못하지만 엄마가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을 두 팔로 안아 올릴 수 없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유방암 수술 후 오른쪽 팔로는 무거운 것을 들어선 안되기에 예전처럼 아이를 안아 올리는 것이 금지되었다. (나처럼 감시 림프절을 여러 개 떼낸 사람은 부종 방지하기 위해 수술한 팔은 정상인처럼 사용해선 안된다. 평생 주사를 맞아서도 안되고, 혈압을 잴 수도 없다. 한 번 부종이 생기면 치료가 힘들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한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게 속상하고 서운했을 법도 한데  한 번도 그걸로 칭얼댄 적안아달라고 떼를 쓴 적도 없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일 아이가 예전처럼 안아달라고 표현했다면 나는 매우 상심했을 것이다. 수술하고 나서 가장 속상한 것 중 하나가 아이를 번쩍 들어 안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아이가 속상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게 내색했다면 내 마음은 더 아팠으리라. 그런데 기특하게도 소은이는 그런 걸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없었다. 더 이상 엄마가 안아줄 수 없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바로 수용한 것이다.


 갑자기 몇 시간 전 아이를 야단친 게 미안해졌다. 엄마 말 안 듣는다고 눈물이 쏙 나도록 혼을 내고, 나대로 아이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아이는 오히려 아빠를 걱정하고 있었다니. 엄마도 아픈데 아빠까지 아프다니 아이에게는 아빠가 병원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이었겠나.


  아프고 나서 달라진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소은이의 장래 희망이다. 예전에는 직업에 관한 그림책을 보며 소은이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질문을 하면 늘 대답이 바뀌었다. 그런데 엄마가 아프고 난 뒤로 소은이의 장래 희망은 의사로 고정되었다. 먼저 물어보지 않아도 의사가 되어 엄마를 고쳐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이. 갑자기 책을 펴고 공부하는 흉내를 내더니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될 거라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아이가 고맙고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어린 소은이에게 엄마가 아프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혹시 엄마가 사라질까 봐 겁이 나진 않았을까? 어려서부터 공주 동화를 좋아하는 소은이는 세 살 때부터 세계명작동화나 디즈니 전집에 나오는 공주 동화책을 읽었다. 그런데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공교롭게도 어려서 엄마를 여의고 계모와 함께 산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당한다. 백설공주도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계모인 왕비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고, 백조왕자에 나오는 오데트 공주도 마찬가지이다. 헨델과 그레텔도 계모에게 쫓겨나고, 인어공주는 애초에 어머니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는 것은 모두 '어머니의 부재'이다. 우리나라 전래 동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콩쥐팥쥐에서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후 계모에게 구박을 당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오고 심청이의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셨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마치 어머니의 부재가 주인공이 겪는 첫 번째 시련의 공식이라도 되는 듯 어쩜 이렇게 똑같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을까.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다. 아이가 "백설공주 엄마는 왜 하늘나라에 갔어? 신데렐라 엄마는 왜 돌아가셨어?"라고 물을 때마다 "엄마가 아파서 돌아가신 거야, 엄마가 아파서 하늘나라에 갔대."라고 무심히 대답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동화책을 읽어줄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혹시나 아이가 엄마가 아픈 것을 하늘나라에 가는 것으로 연상할까 봐 두려웠다. 은연중에 아이의 마음속에 엄마가 하늘나라에 갈까 불안한 마음이 녹아들까 겁이 났다. 한 번도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역할극을 하다 보면 아이가 자신은 '아기 물고기'이고, 엄마 아빠는 돌아가셨다고 말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곤 했다. 동화책을 많이 본 영향인지, 아이의 잠재의식 속에 엄마의 아픔이 불안으로 나타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럴 땐 마음 한 구석이 콕콕 쑤신다. 부디 엄마의 과도한 걱정이길.


 다행히 아이는 요즘 어느 때보다 밝고 명랑하다. 비록 아픈 엄마이지만 엄마가 직장에 가지 않고, 오랜 시간 아이 옆에 있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꽤나 안정이 되는 것 같다. 아직도 여느 아이와 비교하면 힘든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제 남은 건 더 이상 소은이가 엄마, 아빠로 인해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부부의 건강을 챙기는 일! 우리 부부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소은이 곁에 있을 수 있기를 나는 오늘도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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