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아이의 속마음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언제일까? 아이와 가장 친밀한 교감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는 아침 시간과 잠들기 직전의 밤 시간이라고 한다. 수면 시간 전후가 잠재의식과 가장 가까운 무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때 아이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려고 특히 노력한다. 사랑한다는 표현도 이 시간에 아낌없이 퍼붓는다. 워킹맘인 시절에는 이 금쪽같은 시간을 못 누렸기 때문에 휴직 중인 지금 마치 그 시간을 만회라도 하듯이 더욱 열심히.
오늘도 아이가 눈을 뜨자마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랑의 언어를 마구 마구 쏟아냈다. 자고 있다가도 아이가 일어나면 반사적으로 화들짝 깬다. 그리고 마치 안 자고 있었던 사람 마냥 소란스럽게 아이를 반긴다.
M: 우리 예쁜 소은이 굿모닝. 소은이 잘 잤어?
S: 굿모닝, 엄마!
M: 엄마, 아빠는 소은이를 정말 정말 사랑해. 우리 소은이는 어쩜 이렇게 예쁠까? 너무너무 사랑스러워.
S: 그렇지? 난 피부도 보드랍고, 점도 없어.
내 칭찬에 아이는 으쓱으쓱 하며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자신의 볼을 쓰다듬는다.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만연하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킥킥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칭찬을 계속 이어나간다.
결국 자기는 화를 내도 엄마는 참고 좋게 말하라는 것인가. 나는 은근슬쩍 아이가 얄미웠지만 차근차근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아이가 한편으론 기특해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M: 그런데 엄마가 화내면 소은이 기분이 어때?
S: 엄마가 화내면 무서워.
M: 정말? 그렇구나. 그럼 아빠가 화내면?
S: 아빠는 화내도 안 무서워.
아이는 마지막 말을 하며 배시시 웃었다. 아이의 이런 속마음은 처음 알았다. 어릴 때는 우리가 화를 내든 말든 아랑곳도 하지 않아서 그 모습에 더 화가 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화내는 게 아이에게 무섭게 느껴지긴 하는구나싶었다. 아빠가 화내는 건 안 무섭다고 하는 걸 보니, 내가 더 아이에게 화를 크게 내나 보다.
부모가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오은영 박사님은 아이를 훈육할 때도 화를 내지 않되 단호하게 훈육하라고 하셨지만 현실은 어디 그게 쉽나. 결국 화가 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게 된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차가운 말투를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예전에는 내가 화를 내면 소은이는 더 크게 화를 냈다. 내가 참다못해 소리를 지르는 날엔 소은이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한참 훈육이 힘든 시절이었다. 암 진단을 받을 때가 줄곧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소은이가 더 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아픈 뒤로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인지 내가 화를 내면 자기가 바로 잘못했다고 말하고 내 눈치를 살핀다. 은연중에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나를 배려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이유라면 마음이 좀 애틋하지만 무엇이 소은이를 변하게 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어쩌면 그 모든 상황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겠지. 이유가 어쨌든 이제 타협이 되고, 엄마를 무서워한다는 게 의미 있는 변화로 느껴진다. 물론 엄마가 맨날 맨날 화낸다는 아이의 말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정말 내가 매일 아이에게 화를 냈다면 그것 또한 반성할 일이고. 그런 게 아닌데도 아이가 그렇게 여긴다면 그것 또한 나의 불찰이다.
입으로만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이렇게 또 한 걸음 나아간다. 앞으로 소은이가 조금 화를 내도, 엄마인 나는 꾹 참고 좋게 말해보기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