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브런치북 제9회 출판 프로젝트의 수상자를 발표하는 날이다.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고, 두 달여 동안 이 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두 달 전 공모전에 참여할 당시 나는 유방암 치료를 끝낸 지 이제 막 3개월이 된 유방암 환자였다. 물론 지금도 암 환우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보다 마음이 좀 더 편안해졌다는 것?
암을 진단받고 4일째 되는 날,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고, 6개월 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작가가 되고 나서 3주 만에 글을 써서 공모전에 나의 첫 브런치북 <유방암, 알지도 못하면서>를 출품했다. 그야말로 속전속결.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두 달 동안 매일매일 설레고 행복했다. 현실적으로 당선될 확률이 희박할지라도 꿈꾸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랄까.
결과를 기다리며 브런치북에 담지 못한 뒷이야기도 계속 써나갔다. 공모전이 끝났어도 유방암 치료는 계속되고, 나의 삶은 계속 이어지니까. 그러는 사이 처음 한 자리로 시작한 독자수는 세 자리가 되었고, 나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고, 내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은 내가 쓴 글을 읽고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이다. 글을 읽으며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났고, 동시에 위로가 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면 가슴이 벅찼다. 내가 쓴 글이 다른 이의 마음을 위로하고, 공감을 불러올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하고 멋진 일인가!
한 번은 어느 환우분이 나의 글을 읽고 환우 모임에 가입을 한 적이 있었다. 진단받고 나서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긍정의 기운으로 변화시켜 주었다며 내가 가진 글의 힘에 대해 언급을 해주셨다. 그리고 나와 소통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했을 때 내가 더 기쁘고 감사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니, 새삼 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어느 환우분께서 초등학생 아들이 엄마에게 "엄마, 이거 읽어봐." 하며 쪽지를 건넸는데 거기에 내 브런치북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초등학생이 어떻게 나의 브런치북을 알고 엄마에게 소개를 해 준 걸까?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의 글이 다른 사람에게 추천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추천인이 어린아이였다는 것에 더욱 가슴이 뭉클해졌다. 엄마를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이 기특하게 여겨지기도 하거니와, 나의 글이 거기에 쓰일 수 있다니 얼마나 큰 감동인지.
지금도 환우 모임에서 엘라의 브런치북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게 되었다는 분들을 만나면 기분이 묘하고 낯설다. 난 아직 출간 작가도 아니고, 내 글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나의 글을 읽어주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보람되고 즐겁다. 그러기에 비록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당선되지 못했어도 나에게 이런 기회를 마련해준 브런치에 감사하다. 공모전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단 시간에 브런치북을 완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 공모전 발표를 기다리며 김칫국을 열심히 마신 덕분에 매일을 즐겁게 살 수 있었고, 표준 치료가 끝난 뒤 환자들이 가지는 막연한 불안함도 느낄 새가 없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내 글을 읽어준다고 해서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한 푼도 없건만, 대체 무엇이 나를 기쁘게 만들고, 계속해서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일까?아마도 글이 주는 치유력과 소통의 힘 때문일 것이다. 비록 공모전에 당선이 되지는 못했지만 글을 쓰며 나를 치유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겠다는 나의 도전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공모전 탈락 소감을 적는다. 언젠가 나도 다른 이들처럼 당선 소감을 적을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공모전에 떨어진 것을 달래주기도라도 하듯, 오늘 브런치에서 선물 같은 소식이 연이어 전해졌다.
조회수 5000이라는 숫자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물론 조회를 한 모든 사람이 글을 끝까지 읽는 것은 아닐 테지만 5,000명의 사람들이 나의 글을 마주했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금도 매일 유방암을 진단받는 환자들이 늘어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어차피 가야 할 투병의 길이라면 모든 환우들이 최대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담담히 이 길을 걸어갔으면 한다. 그리고 그 길에 나의 이야기가 작은 등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기쁜 소식이 하나 더 있다. 공모전에 떨어져 실망 아닌 실망을 하고 있는 찰나에 거짓말처럼 브런치 글과 관련하여 첫 제안을 받았다. 나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작업하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줄곧 종이책의 출판만 생각해왔지, 웹툰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내 이야기가 웹툰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니?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제안을 받은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고 두근거린다.
이제 공식적으로 공모전에서 탈락했으니 그동안 미루어왔던 출간 기획서도 작성하고, 출판사에 원고도 투고해볼 생각이다. 암 환자여도 열정을 가질 수 있다. 평생 하지 않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나의 인생 모토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