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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Jan 15. 2022

또 다른 질병에 대처하는 자세

자가면역질환, 루프스 항체 양성

 https://brunch.co.kr/@ella1004/42

그러자 다음 진료가 무섭게 느껴졌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가서 또 피를 뽑았다는 주변 환우의 얘기도 있었고, 중금속 결과 몸에 독소가 있으면 독소를 빼기 위해 약을 복용해야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심지어 이름도 낯선 자가면역질환이 의심되어 검사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 분도 있었다. 내 몸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어 갔는데 알면 알수록 또 안 좋은 얘기가 나올까봐 불안한 기분이랄까.
 
                                                                                 <지난 글 '기능의학병원 후기' 중에서>


 한 달 전, 이 글을 작성할 때만해도 내가 자가면역질환 의심환자가 될 줄몰랐다.  글을 쓸 당시는 지금 다니고 있는 기능의학병원을 처음 방문하고 피 검사를 기다리던 때였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자세히 검사를 해야 하나? 정말 필요한 검사일까?'라는 생각에 반신반의하며 피를 뽑았다. 글의 마무리도 '대사치료도 중요하지만 결국 꾸준히 할 수 있는 자신만의 관리가 더 중요하다.'라는 결론이었다.


 그런데 검사 결과 내가 바로 '낯선 자가면역질환이 의심되어 검사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 환자'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얼마나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나. 자가면역질환이 의심되어 정밀 검사를 위해 다시 피를 뽑았다. 그때만 해도 '설마, 별 거 아닐거야.'라는 생각으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도 자가면역질환의 종류는 80가지가 넘으며, 그 중 루푸스나 류마티스관절염이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이고, 그런 게 아니라면 크게 위험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설마 내가 그 중에 하나에 속하진 않겠지 생각했다. 항상 몸이 피곤한 것 빼고는 특별한 증상도 없었기에 더욱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머릿속은 자가면역질환보다 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머지 다 음성인데 딱 1개가 양성이네요. 루푸스 항체가 양성으로 나왔어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루푸스라니? 잠시 사고가 정지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루푸스도 확진 시 희귀 난치성 질환이라 암처럼 산정특례 중증등록이 가능한데 지금은 확진 단계 아니라고 하셨다


 병원을 나오며 어안이 벙벙했다.  병원에 오는 길, 불과 몇 시간 전에 우연히 희우 작가님의 <당연한 하루는 없다>라는 책을 소개받았다. 그 책의 기본정보에서 읽은 것이 내가 아는 루푸스에 대한 전부였다. 20대 어린 나이에 투석과 신장 이식을 하고, 10년을 투병생활을 해온 작가님의 아픈 이력이 떠올랐다.


 '왜 내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지만, 재빨리 그 생각을 차단했다.  내 안에 슬픈 감정이 침입하지 못하게 꽁꽁 마음을 싸매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라고 마음속으로 되내였다. 난 울지 않았다. 그리고 암환자로 살며, 다짐했던 것들을 빠르게 적용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최악을 상정하지 않기. 질병에 대해 공부하기. 알아야 두려움을 없앨 수 있으니까.


 그러자 바로 평정심을 찾았다. 생각을 바꾸자 마음에 동요가 없었고, 감정도 뒤따라 오지 않았다. 그 동안 암환자로 살며 열심히 마음 관리를 해온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마음도 훈련이 필요한 거구나.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한 뼘 성장한 느낌이었다. 어찌보면 '암'이라는 큰 녀석과 싸우다보니 이 정도 일은 단련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암을 겪었기에  더 이상 무서울 게 없기도 했다.  


 바로 루푸스에 대해 검색을 했다. 전체 인구의 0.1%정도에서만 발생하는 희귀질환. 발병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역시 스트레스가 가장 컸다. 스트레스는 이렇게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구나.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 더 말하면 입이 아프다.


 루푸스는 완치의 개념이 없었고, 질병 활성도를 관찰하며 치료법을 적용한다고 한다. 하긴, 암도 완치의 개념이 없이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이니까. 치료 목표는 다양한 장기 손상 예방이었다. 이것 역시 유방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읽어나가는 데 '여성 호르몬'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여성 호르몬? 또 다시 여성호르몬이란 말인가. '루푸스는 가임기 여성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며 여성 호르몬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라는 문장을 읽자 유방암을 진단받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리고 뒤이어 도대체 내 여성호르몬 체계에 어떤 문제가 생겼길래 이런 것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시험관 시술과 유방암, 그리고 루푸스까지. 그 인과관계를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처럼 부질없이 느껴졌다.  나름 결론을 내어 보면 시험관으로 몸이 망가진 상황에서 스트레스와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면역 체계가 무너졌고 그 결과 유방암과 자가면역질환이 생긴 것이라고 정리하면 될까?


 루푸스는 다양하게 우리 몸을 공격하는데 장기로 침범하지 않게 예방하는 게 가장 중요해보였다. 루프스의 진단이 어려운 이유는 증상이 너무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주요 증상은 얼굴, 손과 발의 발진, 탈모, 구강 궤양, 미열, 피로, 두통, 관절통 등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암을 진단받기 직전 툭하면 구강 궤양이 생겨 스테로이드제를 달고 살았다.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심한 구내염으로 이비인후과를 방문했었다.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이유를 알 수 없이 다리에 빨갛게 발진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만성 피로는 늘 달고 살았고, 탈모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전부 루푸스와 연관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루푸스 환자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잠, 스트레스 받지 않기, 균형잡힌 영양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암의 관리법과 다르지 않다. 결국은 둘 다 내 몸의 면역과 관련된 질병이다보니, 원인도 치료도 비슷했다. 심지어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주신 루푸스 약도 암의 대사치료제로 쓰이는 것이었다. 결론은 루푸스 환자가 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보였다. 게다가 나는 아직 의심 단계에 있을 뿐이고, 혹시 루프스라 해도 95% 경미한 환자라고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에 잠겼다. 이제 또 무엇을 해야 할까? 그저 담담히 내 일상을 이어가면 될까? 다시 글을 쓰고, 출판사와 계약을 마무리하고, 유방암에 대한 책을 내면 되는 걸까? 살면서 암환자가 되는 것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희귀질환인 루푸스는 더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실감이 안나는 것은 암이나 루푸스나 똑같다.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암도 루푸스도,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것을.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집으로 돌아오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가면역질환을 갖고 있지만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기능의학병원에 와서 피검사를 하지 않았다면 루푸스 항체가 있다는 걸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특히 주변에 수소문을 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암환자들이 자가면역질환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면역체계에 이상이 있으니 결국 암이라는 무서운 질병이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이번 일을 내 몸의 면역체계를 재정비하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증상이 발현되기 전에, 미리 예방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 내 몸을 더 섬세하게 돌봐주어야겠다.      


 문득 며칠 전 만났던 출판사 대표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내 앞에서 A4 종이를 반으로 쭉 찢으시다 마지막 부분만을 남겨두고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들은 종이가 완전히 찢기기 전까지는 자신의 건강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괜찮은 줄 알죠. 종이가 완전히 찢어져야,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야,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내 종이는 비록 완전히 찢어졌지만 나는 지금 그 종이를 다시 붙이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갈기갈기 찢어져 되돌릴 수 없을 정도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찢어진 종이를 풀로 붙이고, 스카치 테이프로 감싸서 빳빳하게 코팅까지 하고 싶다. 다시는 찢어지지 못하게. 하지만 살다보면 앞으로 또 건강에 위협을 받고, 또 다른 질병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예전 같았으면 인터넷으로 ‘루푸스’를 검색하고 5%의 중증 환자의 경우를 상정하며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극단적인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과한 걱정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암을 진단받고도 지금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루푸스도 관리만 잘 한다면 드러나지 않고 무탈히 지나갈 것이라 믿는다. 암을 경험하며 배운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되고,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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