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상선 고치는 의사잖아
나는 내분비내과 의사다.
내분비내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여러 기관에 대해서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이다.
이러한 기관에는 뇌하수체, 시상하부, 갑상선, 부갑상선, 부신, 췌장 등이 있다.
보통 이런 기관 중에 한두 가지를 세부 전공으로 선택하는데, 나는 갑상선을 세부 전공으로 선택했다.
그 이유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니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내가 갑상선 암에 걸렸다.
갑상선 암의 발병률은 OECD 평균 10만 명당 9.7명으로 퍼센트로 따지면 0.0097%이다.
짜증 나니까 우리나라 기준으로 계산해보자면, 10만 명당 58.3명으로 0.0583%이다.
(국내 발병률이 높은 이유는 저렴한 초음파수가로 인해 검사 빈도가 높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니, 경쟁률 100대 1이다 200대 1이다 하던 주택청약은 죽어라 안되더니, 10000대 1인 암에 걸리다니.
한동안 머리가 멍 해졌다.
나는 강남세브란스 내분비내과 임상강사 시절 세션당 적게는 30명에서 많게는 80명의 환자를 보았다.
역대 강사 중에 가장 많은 환자를 보았다고 해서, 별명이 내분비내과 장겨울이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외과의 유일한 레지던트인 장겨울 선생만큼 일을 많이 한다는 의미로 외래 직원이 붙여주었다.)
내가 하루 중 가장 많이 한 말은,
“양성입니다.”
일 것이다.
많게는 하루에 다섯 번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 말을 하는 것이 참 좋았다.
이 말 뒤에 하게 되는 말은
“당장 수술은 필요 없고 1년 뒤 초음파를 추적해 봅시다.”
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하게 되면 딱히 치료를 해 드린 것도 없는데 환자들이 참 고마워했다.
악성 소식을 전하게 되는 빈도는 이것보다 현저히 적었는데, 적게는 몇 주에 한 번, 많아도 하루에 한두 번 정도였다.
내 조직검사 결과가 악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억울했다.
왜 나는 그토록 많이 전했던 양성이라는 소식을 스스로에게 전하지 못할까?
초음파 모양이 나쁜 편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성 판정을 받은 수많은 환자가 있었는데.
나는 술, 담배도 하지 않고 가족력도 없는데.
갑상선 내분비내과 의사 중에 갑상선 암 걸린 적 있는 사람은 못 본 것 같은데.
친언니에게 말했더니,
“너는 도대체 얼마나 좋은 의사가 되려고 그러니.”
라고 한다.
그래, 내가 걸려보니까 확실히 이전과 다르게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사람마다 글을 쓰는 이유가 다르겠지만, 나는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전작인 ‘오늘도 아픈 그대에게’는 수련 시절 만난 환자들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게 쓰게 되었다.
사실 쓰는 도중에는 이래저래 자신이 없었지만, 쓰고 나니 정말 책에 기록된 일화 말고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게 되어서,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다시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내가 암을 진단받고 치료받을 때 느꼈던 기분, 감정, 생각, 상황들을 평생 잊지 않고 환자를 대하고 싶기 때문이다.
갑상선 암은 비교적 예후가 좋은 암이기 때문에, 나는 다시 건강해질 것이고, 아팠던 기억을 잊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글은 남아서, 읽는 이들을 위로하고 스스로를 격려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