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의 증상
나는 어린아이가 순수하다던가 예지력이 있다던가 하는 등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순수하지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 학교에서 114번으로 전화를 걸면 전화번호를 안내해준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다음 주쯤인가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수화기를 들어 114번을 눌렀다.
나는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된 할아버지의 하늘나라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이 자리를 빌려 안내원분께 죄송합니다...)
듣고 있던 가족들은 모두 놀라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사실 어렴풋한 기억에 의하면, 내심 그렇게 하면 가족들이 감동하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참 영민한 어린이였던 것이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이러한 이유로 아이가 순수하다던가 아이가 하는 행동은 남다르다든가 하는 말들을 믿지 않았는데, 사실 내가 갑상선암을 조기 진단받게 된 데에는 딸아이의 역할이 컸다.
딸아이는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았는데, 유독 나의 목은 꼭 껴안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가 내 목을 끌어안고 나면 한동안 목이 불편했다.
계속해서 무언가가 누르는 느낌이 나기도 하고, 기침이 연속해서 나오기도 했다.
내가 남편에게
"그런데, 아기가 목을 끌어안고 나면 한동안 목이 너무 아프지 않아?"
하고 물으니 본인은 전혀 그런 증상이 없다며 얼른 미루던 조직검사를 받아보라고 한다.
그날 나는 조직검사를 받았고, 암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암은 증상이 없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이 말은 거꾸로 하면 건강한 상태에서 꾸준히 검진을 받아야 조기 발견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다.
일부 환자에서 통증을 느끼거나, 목소리가 변할 수 있다.
드물지만 호흡곤란이나 객혈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암세포의 종류의 따라 발생 빈도가 다양하며, 예후가 나쁜 종류일수록 증상이 급격하고 심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 외에도 아이가 내 미래를 인도한(?) 몇 가지 경험이 있다.
나는 전공의 때 출산을 하고 조리원에서 내과학 교과서를 읽었는데, 그때 내분비내과가 가장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의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내분비내과는 내과 중에서도 소수의 사람이 세부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어서 약간 망설였다.
하지만 일에 쩔어있을때 하는 결정보다, 쉬면서 천천히 한 결정이 맞겠지 하는 생각에 선택을 강행했다.
그런데 환자를 보면 볼수록 나와 정말 잘 맞아서, 아기 덕분에 전공을 잘 선택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출산 전에는 일이고 전공이고 다 너무 힘들어서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만 하루에 열 번씩(더 되던가...) 하면서 일을 했었는데,
아기를 낳고 나니 육아가 훨씬 더 힘들어서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그리고, 뭐랄까, 아기를 보는 일은 소중한 일임이 분명하지만, 육아에만 너무 빠져들면 여태까지의 나의 인생은 잠시 잊혀지고 자아가 희미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이 항상 나쁘다는 것은 아닌데, 엄마가 아닌 나의 모습도 잃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마음 한켠에 점점 자라났다.
덕분에 환자 보고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병원에서는 성실하고 유능하다는 평을 얻었다.
내 아이가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당사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으니 가능한 피하려 한다.
하지만 만약에 이 세상에 정말 천사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내 아기일 것이다.
하고 생각이 들만큼 내 딸은 나를 건강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