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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월화 Apr 17. 2022

안단테 소프라노

갑상선암 수술 후유증


수술 직후에는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느끼지 못했는데, 오후가 되니 불편한 부분이 특정되기 시작했다.

목은 뜨겁고 딱딱한 느낌은 줄어들었지만, 피부가 간지럽고 당기는 느낌은 심해졌다.

손발 저림은 줄어들었지만 남아있었다.

물을 마실 때는 사레가 자주 들려 지금도 빨대를 애용한다.

고개를 숙이고 물을 마시면 사레가 덜 들린다는 것을 시간이 꽤 지나서야 깨달았다.

가장 불편한 점은 목소리가 작게 나오고 고음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 증상 역시 지속되고 있다.

외과 선생님께 문의하니 6개월 이상 증상이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합창단 활동을 했다.

처음 시작을 하게 된 것은 그저 단복이 예뻐서였다.

민트색 리본 타이가 달린 세일러복이었는데, 합창단은 3학년부터 할 수 있었으므로 세일러복을 입은 언니들을 보면서 어서 3학년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3학년이 되자마자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테스트를 통해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로 파트가 나뉘게 되는데, 다들 내심 가장 돋보이는 소프라노가 되고 싶어서 테스트 내내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내가 노래를 시작하려고 하자, 단장 선생님이 물으셨다.


"너 혹시 오빠 있니?"


"아니요."


"내가 아는 학생과 많이 닮아서...

그 친구 동생인 줄 알았네.

시작하세요."


사실 선생님뿐만 아니라, 나는 평생 자기가 아는 누군가와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중학교 때는 처음 본 친구들이 너무나 확신에 차서


"쟤야, 쟤, 문OO!"


하며 지나가는 일도(나는 송 씨인데...)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다른 반 친구가 자기를 닮았다고 자꾸 언급된다며 기분 나빠서(?) 나를 보러 오기도 하고,

실습학생 시절에는 전공의 선생님이 명찰을 빤히 보다가,


"양 씨가 아니네.

너무 똑같이 생겨서 양OO 동생인 줄 알았다."


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처음엔 기분이 이상했는데, 자주 듣다 보니 무뎌졌다.

그저 나와 닮은 그 누군가가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기를 바랄 뿐.

긴장된 상태로 노래를 마치자 단장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했다.

고민 끝에 소프라노로 배정해 주셨다.

나랑 닮았다던 그 오빠가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합창단은 매일 아침 일찍, 때로는 점심식사 후에나 방과 후에도 연습을 했기 때문에,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합창단을 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대회날이 되어 단장 선생님과 옆 친구들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한 소리를 내는 경험은 굉장히 특별하고 소중한 기억이었다.

시상을 할 때 친구들과 손을 모으고 우리 학교 이름이 불려지기를 바랐다.

그 기억이 좋아서 결국 매년 합창단에 지원하고, 연습을 하며 후회를 하고, 대회에 나가서 감동하고를 반복했다.

어쩌면 대회 후에 먹는 짜장면 맛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고.



수술을 하게 되면 고음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에, 기분이 이상했다.

그럼 더 이상 소프라노가 아닐 수도 있겠네, 하고 생각했다.

합창단을 그만둔 지 10년도 훨씬 넘었으면서.



가장 좋아했던 합창은

'구름 타고 날아 보자'이다.

멜로디가 예쁘고, 이 곡으로 우리 학교 합창단이 라디오 방송까지 출연했었기 때문에 더욱 각별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구름 타고 날아보자 이 세상 끝까지 날아 가보자

더운 나라 추운 나라 따뜻한 남쪽 나라로

온 세상 이곳저곳 날아 친구들 모두 만나고 싶어요

친구들마다 얼굴이 다르고 말도 모두들 다르지만

우리는 알 수가 있어요 그리고 느낄 수 있어요

서로의 마음을'



퇴근길 차에서 혼자 불러보니 역시 소프라노는 무리다.

그렇다고 메조나 알토도 중요해, 같은 진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내과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듯이,

소프라노는 나의 자랑이었으니까.



내가 책 출간을 망설였던 이유는 단 하나, 주목받는 것을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출간을 하고 나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나의 생각에 공감하며

'우리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만,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고 말해주어서 책을 세상에 내놓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알토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작가가 되고 난 후의 세상이 좀 더 멋진 걸 보면

알토가 되고 난 후의 세상도 좀 더 멋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해보지 않고서야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모두들 다르지만,

세상 끝까지 날아가 보자고 호기롭게 외치던 어린 노래처럼.



* 근황이 궁금하신 분들이 계신다면... (Yes24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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