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수술 준비
조직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한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괴로웠던 과거들을 떠올렸다.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다음을 계획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세침흡인검사 결과 5단계(Suspicious for malignancy)가 나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갑상선내분비외과 외래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내분비내과 송월화인데요.
제가 FNAB Five가 나와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외래 언제가 가능할까요?"
"선생님이 Five가 나왔다고요?"
"네. 허허."
"선생님이요? 선생님이... 선생님을... 잠시만요... 등록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외래를 보고 검사를 받고 수술 날짜를 정하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환자가 되어 이런 과정들을 진행해보니, 공복으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 힘들었다.
채혈은 할만한데 CT촬영이 정말 별로였다.
뜨거운 조영제가 온몸을 지나며 불쾌한 향기까지 내뿜는데, 왜 환자들이 이 과정에서 구토도 하고 실신도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나는 정말 꼭 필요한 게 아니면 공복 검사를 함부로 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술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고전적인 절개방식을 선택했다.
나는 내과의사이기 때문에 수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인턴 때 수술방에서 보았던 경험에 의하면 절개방식이 목에 흉이 남는다는 것 외에는 여러모로 깔끔하고 부작용도 적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절개를 하면 한 시간에 가능한 수술을 로봇으로 세 시간째 하고 있으면 이게 이 정도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남편은 집에서 아기를 봐야 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없는 간호간병 병동으로 입원을 했다.
세면도구, 로션, 물, 빨대, 옷가지, 가습기, 노트북, 충전기 정도로 짐을 싸갔는데,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수술 당일에는 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수술실에 들어가는데, 혹시라도 머리카락이 뒤통수에 걸려있다가 빠지는 등의 일로 인해 수술 도중에 포지션이 바뀌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수술 준비실에서 수술모를 쓰고 몇 가지 정보를 확인하고 수술방에 들어갔다.
수술방에서 환자로서 객체가 되어 누워있는 기분은 좀 별로다.
그런데 사실 주체로서 수술 준비를 하는 기분도 그렇게 좋진 않다.
그러고 보면 수술방은 안에 있는 모두가 함께 불행에 맞서 싸우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3년 전 딸아이의 심박수가 떨어지며 응급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수술방에서 기억이란, 마취 유도 직전까지의 기억이 전부겠지만.
그때 당시 나는
'아기가 살아서 나오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 했다.
이번에는 수술실에서 뭐라고 기도를 해야 할까, 미리 생각을 해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교수님, 마취 시작하겠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리자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아.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했던 걸까?
성경에서는 모든 상황에 감사하라고 하는데, 이런 말 하면 목사님께 혼나겠지만 난 반대파였다.
사람은 본인이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이 있고 그것에 넘치는 불행이 다가오면 버겁고 화가 난다.
하나도 안 고맙고 짜증 나는 데, 고마운 척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마취 직전에 든 나의 생각은 진심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어서,
평생의 꿈을 직업으로 가지게 되어서,
더 아프기 전에 암을 발견하고 제거하게 되어서,
참 나쁘지 않은 인생인데, 암환자가 되었다고 억울해하는 데에 남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감사할 것이다.
하나님 기분 좋으라고가 아니라 내 기분 좋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