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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월화 May 04. 2022

변하지 않는 것

갑상선암과 임신


처음 갑상선 결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2019년, 갑상선보다 양쪽 난소의 혹이 크기도 모양도 더 좋지 않았기 때문에 계획보다 빨리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

의사가 임신과 출산 경험이 있다는 것이 진료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산모가 호소하는 증상들이 일반적인 증상인지, 정밀검사를 요하는 증상인지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내분비내과를 분과로 선택할 때만 해도, 이렇게 산모들을 많이 만나는 과인지 몰랐다.

내분비내과로 온 산모들은 보통 임신성 당뇨나 임신 시 발견된 갑상선 호르몬 수치 이상으로 온다.

두 질환 모두 태아의 발생과 출산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와 내분비내과 의사가 함께 협의 진료하며 자주 산모를 진료한다.

긴장하며 아기의 심장박동을 확인한 기억, 떨리는 마음으로 임신성 당뇨검사 결과지를 확인하던 기억이 나에게도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정성껏 산모를 진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갑상선 암 환자는 젊고 어린 여성이 많기 때문에, 가장 궁금한 것은 임신이 재발 위험을 높이는가에 대한 걱정일 것이다.

갑상선암 치료 후에 임신한 산모에서 암 재발 유무를 조사한 여러 연구들에 의하면 갑상선암이 임신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갑상선암으로 갑상선을 절제한 경우 갑상선 저하증이 쉽게 오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은 혈액검사를 통해 갑상선 호르몬 수치를 측정해야 하고, 더 적극적으로 갑상선 호르몬제 보충을 해야 한다.

갑상선 호르몬 저하는 출산 합병증을 증가시키고, 태아의 신경계 장애, 선천성 기형의 빈도를 높일 수도 있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Haddow HE et.al., Maternal thyroid deficiency during pregnancy and sebsequent neuropsychological development of the child, NEJM 341:549-555, 1999)



흔히 아이의 기질에 따라 육아 난이도가 결정된다고들 한다.

난이도에 상중하가 있다면, 우리 아기는 중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수월했던 점은 밤에 잠을 잘 자는 편이며, 말을 빨리해서 소통이 쉬웠다.

힘들었던 점은 밥을 잘 안 먹어서 아직도 따라다니면서 먹이며, 장난기가 많아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질문이 많다.

엄마가 일을 해서 그런지 엄마가 있는 시간에는 식사도, 옷 입기도, 산책도 엄마가 해주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

비교대상은 딱히 없지만, 종합해보면 아주 까다롭지도 아주 쉽지도 않은 편인 것 같다.



퇴근하고 나서는 짧게나마 동네 산책을 하면서 아기가 좋아하는 간식을 함께 사 먹고 돌아오는데, 이때 아기의 기분이 정말 좋아 보인다.

기분 좋은 딸의 미소를 보면 내가 더 행복하게 해 줄 수도 있는데, 일을 핑계로 공부를 핑계로 못해주고 있는 것을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런 감정의 줄타기를 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게 부모의 삶인가 싶을 때면 세상 모든 부모들이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딸아이도 내가 부족하고, 나도 딸아이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녀계획은 애당초 하나로 마감했다.

하지만 암에 걸리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나랑 남편 우리 딸 중에 내가 제일 먼저 죽을 확률이 아무래도 높지 않나.

그렇게 되면 남편과 딸만 둘이 세상에 남게 되는데, 이건 뭔가 좀 아닌 것 같다.

뭔가 별로고, 멤버가(?) 더 있으면 좀 나을 것 같다.

전제도, 결과도 이상한 추론이지만 그냥 내 기분이 그렇다.

현실로 옮기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어찌 되었든 나의 가족관에 변화가 생긴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제도 퇴근 후에 산책을 하는데 대뜸 딸아이가


"엄마, 변했어."


라고 한다.

나는 너무 놀라서 물었다.


"엄마가 변했다고?

뭐가 변했어?"


"... 엄마, 변했어."


28개월 딸의 발달하다 만 어휘력은 이따금씩 나를 이렇게 긴장하게 한다.


"좋게 변했어, 나쁘게 변했어?"


"... 좋게 변했어."


뭔가 엎드려 절 받은 기분이지만 일단 안심했다.



그래,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더 변하고 너는 더더더 변하겠지.

그 변화는 취업이 될 수도, 임신이나 육아가 될 수도, 질병이 될 수도 있겠지.

네가 변화하는 그 많은 순간에도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평생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가 네 곁에 없는 순간에도 오래도록 기억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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