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말할 용기

사실은, 나 너를 좋아하지 않아.

by 최유정

오랜만에 만나는 그는 나를 만나기 전, 수화기 너머로 이야기했다.

"내 얼굴이 많이 상해서 당신이 걱정하겠다."


일주일 만에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의 얼굴이 어디가 상했는지 한참을 가만히 쳐다봤다.

"괜찮은데?"


한참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괜찮은 거 같다며 눈을 돌리는 나에게 그는 추위로 인해 벌겋고 다 터버린 자신의 두 손등을 내밀었다. 누가 봐도 아파 보이는 그의 손등 위로, 사랑과 걱정을 기대하는 그의 표정이 날 마주했다. 나는 그저 내 생각과 마음은 잠시 볼륨을 끈 뒤, 그 표정에 맞는 반응을 건넸다.

"아프겠다. 걱정이네."


몇 시간 뒤, 저녁을 먹으러 향하는 길에 자신을 반기지 않는 듯하게 느껴져서 다음 주에는 날 보러 오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무언갈 눈치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것이 아니라고 누구보다 여전히 가장 사랑한다고 따뜻한 내 음성을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가 바라는 단어를 입에 두지 않고, 페달을 밟는 일에 집중했다.


사실, 용기가 없었다.

사실을 말할 용기가, 정확하게는 사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무려 5년을 사랑한다고 말한 우리 사이에, 사랑이 사라졌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은 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장 예쁜 시절에, 가장 치열한 사랑을 했던 우리에게서 더 이상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이전의 좋았던 시간들로 힘을 잔뜩 줘서 이 시간을 겨우 부여잡고 있다는 것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알다시피 우리는 그냥 평온해서,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알아서 굳이 부딪힐 일도 없어서, 그냥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면 모든 것이 가능한 관계라 가끔씩 뱉는 이별의 첫 술은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헤어질 핑계를, 그만할 이유를 도통 찾을 수가 없었던 나는 우연찮게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어떤 문제인지 앞뒤 사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이혼한 두 남녀가 식당에서 만나 다시 이별을 하는 내용이었는데 여자가 남자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건네는 장면이었다. 이 모든 상황은 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바라는 게 너무 많았다며 미안함을 건네고 함께 살아준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내용이었다.


영상을 보며 한참을 울었다. 같은 내용의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마주할 용기가 없는 내가 자꾸만 울컥, 올라오는 탓에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삼켜내며 계속해서 영상만 반복하며 봤다.


5년이란 시간 동안 이별의 운을 살짝 떼보는 사람도 늘 그가 아닌 나였다. 권태라는 것이 우리는 지나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도 별반 특별하지 않아서, 그렇게 다르지 않아서 서서히 스며들고 있던 권태를 눈 깜짝하는 새 맞이하게 되었을 뿐이다. 특별한 사랑이라 굳게 믿고 싶었던 것은 내 욕심이었다.


당신의 애정표현이 낯설고 불편해졌다는 말을 아껴왔다.

사랑하냐는 질문에 사랑했었다는 답을 참아왔다.


당신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도 나와 같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사랑은 나와 다르게 여전히 유효하다면 고맙다고, 또 미안하다고 말을 전해본다.


나와 사랑해 줘서 고마웠고, 이 모든 것은 사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나의 잘못이었다고 말을 마치며, 혹여나 아직도 당신에게 남아있는 사랑이 나를 잡으려거든 우리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고, 충분히 사랑했다는 말을 당신의 벌게진 손등 위에 올려두며 잡은 손을 놓으려 한다.



https://youtu.be/GVsTkAKIsFU?si=9uHdoPQPxffa1JK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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