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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니 Jul 13. 2023

도서관 맛 들이기

나도 책 좋아하는 아이를 키우고 싶다

  작년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고민이 생겼다. 그림책에서 글밥이 많은 줄글책으로 넘어가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싶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는다는 책을 찾아보았다. 떡집 시리즈가 인기가 있단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책을 당장 구매해서 아이에게 줬다. 역시 그림책만 보던 아이는 꽤 두툼한 줄글책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부분을 내가 읽어주었다. 수상한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다음이 궁금한 그 순간까지만 읽어주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은 주말이었다. 아침에 눈을 뜬 나는 마음속으로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다음 내용이 궁금했던지 그 책을 읽고 있었다. 눈으로 열심히 글자를 따라가며 읽는 모습은 한눈에 봐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다음 시리즈도 나온 것은 몽땅 사주었다. 그런데 내 마음만 급했다. 아이가 두 권을 읽더니 흥미가 떨어졌다. 이런.. 어떡하지.. 열심히 유튜브를 뒤져서 독서 교육과 관련된 영상, 그리고 블로그와 카페의 글을 마구 찾아 읽었다.

  재미있는 독후활동? 해주면 좋지만 내가 꾸준히 해주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또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도서관이었다. 너로 정했다. 도서관!


  나는 첫째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갔다. 초등학교 1학년은 일찍 끝난다. 그러니 오후에 시간도 많겠다 싶어 동생들이 오기 전에 둘이서 오붓이 도서관 데이트를 하자며 차를 타고 공원을 옆에 끼고 있는 도서관에 갔다.

  데이트라는 말에 아이는 속아 넘어갔다. 그리고 아이는 신기해했다. 서점에는 가봤지만 도서관은 처음이었고, 아이는 자기 이름이 쓰인 도서관 카드를 발급 받고 뿌듯해했다. 책을 빌려서 나오며 공원도 산책하고 작게 만들어져 있는 아기용 놀이터에서 시소도 타며 즐거워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꾸준히 도서관에 갔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한 달에 두 번 주말 중 하루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왔다. (2학기에는 복직으로 인해 주중에는 가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아이들은 도서관 가는 날을 즐겁게 기다린다.


아이들은 도서관에 놀고먹으러 갔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세 가지 있다. 이것은 여러 글을 읽고 영상물을 시청하며 힌트를 얻은 방법들 중 내가 직접 적용해 보았고 확실히 추천할 수 있는 것이다.


  첫 번째로 많은 독서 교육자들이 말하듯이 도서관에서 아이가 읽을 책을 스스로 고르게 한다.

  나는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각자 7권을 빌릴 수 있다고 말한다. 당연히 만화책을 처음으로 집어 든다. 그래서 7권 중 2권만 만화책을 허용하고 5권은 줄글책이나 그림책을 고르게 했다. (아예 만화책을 금지하면 아이는 선택권이 없다고 느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되어야 읽을 법한 책을 표지만 보고 빌리겠다고 하거나, 내 마음에는 썩 들지 않는 책을 가져왔다. 그래도 내가 바꾸지 않고 아이가 고른 것을 빌렸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자신의 수준에 적당한 줄글책의 두께와 글자 크기들을 선별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학교에서 읽는 책의 제목을 기억해 와서 도서관 검색용 컴퓨터에서 찾아보는 정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책은? 여전히 가져온다. 그래도 아이가 가져오면 빌린다.

  아이가 책을 고를 때 따라다니며 코칭도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 시간에 내가 읽히고 싶은 책 두세 권 정도를 골라 아이들이 빌린 책들 사이에 교묘하게 끼워둔다.


  두 번째로 빌려온 책을 모두 읽었는지 검사하지 않는다. 한 번 열어본 책을 중간까지 읽다가 멈추어도 그냥 둔다.

  아이가 책을 빌려오는 것을 숙제를 가져오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는 자기가 마음에 드는 책은 단숨에 읽기도 하고, 읽다가 별로인 책은 중간에 덮어두었다.

  어떨 때는 펴 보지도 않은 책이 빌린 책의 반도 넘는다. 그래도 미련 없이 반납한다. 그러면 아이는 아쉬워한다. 그냥 산책하다 걸어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처럼 가벼운 것이다. 그래도 책을 읽지 못해 아쉬움을 느끼다니 왠지 뿌듯해진다. 정 아쉬워하면 두권 정도만 고르라고 하고, (이것도 일종의 권모술수다. 책들을 보며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어쩔 수 없다는 태도, 아이에게 큰 관용이라도 베푸는 듯한 태도로 딱 두 권만 고르라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남은 책들이 모두 무척 읽고 싶었던 것인 양 더 자세히 살펴보며 고심한다.) 그 책을 반납 후 다시 대여한다. 그러면 아이는 집에 와서 그 책부터 펼쳐 본다.


  마지막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나서 옆에 있는 공원에서 재미있게 놀았다.

  처음으로 온 가족이 도서관을 방문하던 날에 나는 작정하고 축구공과 음료수를 준비했다. 함께 축구도 하고, 줄넘기를 가져가서 연습도 하고, 공원을 산책하며 언덕 위의 정자에도 올라가 보고 나무와 벌레도 보았다. 그리고 근처 편의점에 가서 소시지와 핫바도 먹어 보고,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 공원 벤치에서 먹으며 놀았다.

  도서관에 가면 즐거운 일이 생긴다고 생각했으면 해서였다. 매번 그럴 필요도 없고 한 번 놀 때 열심히 논다. 다음번에는 책만 빌려서 오거나, 편의점 앞에 앉아서 아이스크림 하나만 먹고 오기도 했다.

  다행히 나의 작전은 아직까지 잘 먹혀들고 있다. 지금 아이들은 도서관에 가자고 하면 신이 난다.


스스로 책을 읽는 모습은 항상 남겨두고 싶다.


  이렇게 1년을 보내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첫째와 한 살 차이인 둘째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형이 읽는 책을 보고 자연스럽게 줄글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41개월 차 막내는 도서관에 언제 가냐고 물어볼 정도로 도서관의 존재를 벌써부터 친숙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면 유아도서실을 알아서 찾아가 신발을 벗어던지고 책을 뽑아 든다. 물론 아직 한글도 모르고 몇 권 들여다보고 나면 '시소 타고 싶다', '소시지 먹고 싶다' 등등의 말로 방해를 하긴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싶다.


  아이들의 독서 교육에 대해 식견이 긴 하지만 아이들의 변화를 보며 다소 소극적인 나도 실천할  있던 어렵지 않은 방법이므로, 작은 도움이 될까 싶어 글을 써본다.

  내가 아직 겪지 못한 앞으로의 경험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도서관 책장을 내 집 책장처럼 익숙하게 둘러볼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도 나는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계속 갈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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