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탕 선녀님(백희나)
막내가 책을 읽어달라고 가지고 왔다. 장수탕 선녀님이다. 백희나 작가님의 그림책은 워낙에 유명하기도 하고, 또 그 내용이 나의 감성에도 잘 와닿아서 우리 집에도 몇 권 있다. 그중에 장수탕 선녀님은 내가 어릴 적 볼 수 있던 모습들에 대한 향수로 사게 된 책이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마음에 들어서 산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막내는 내가 책을 읽으면 한 문장 읽고 꼭 자기가 따라서 그 문장을 말해야 한다. ‘장수탕’ 같은 처음 듣는 단어는 대충 ‘ㅁㅅ탕’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며 알아듣지 못할 단어를 만들지만 자기도 그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림들을 신기한 눈으로 자세히 바라보며 끝까지 읽고 나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을 풀어놓는다.
- 엄마, 문 닫아야겠어.
- 왜?
- 할머니 보면 안 되잖아.
- 왜 할머니를 보면 안 돼?
- 할머니 보면 속상해서.
- 할머니를 보면 할머니가 속상해?
- 응.
- 왜 속상해?
- 할머니 못 생겨서.
- (헉..)
그림 속에 나온 익살스러운 할머니의 얼굴과 발가벗은 몸이 자랑할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건지, 보이면 할머니가 부끄러워할 것 같다고 생각한 건지. 저 아이가 아직은 모자란 어휘들로 무슨 느낌을 표현한 것인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내 몫이다.
착한 마음을 가진 주인공에 대해서 내가 더 자세히 설명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이가 책을 넘기고 이야기가 모두 끝난 마지막 뒤표지 안쪽의 그림을 본다.
장수탕 선녀님 (백희나)
자그마한 선녀할머니가 목욕탕 바가지 안에서 음료수 냉장고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는 나에게 묻는다.
- 엄마, 할머니는 왜 여기 있어?
- 아~ 할머니는 원래 하늘에 사는 선녀야. 선녀할머니인데 날개옷을 잃어버려서 계속 여기에 살고 계신대.
내 말을 이해할까 싶었는데 생각지 못한 말이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
- 어! 그럼~ 우리가 양보해 주자.
- 양보? 뭘? 날개옷을?
- 응! 날개옷!
- 우리 집에는 날개옷 없는데?
- 그럼 우리가 만들어주면 되지.
- 우리가 만들어?
- 응. 우리가 책 속에 들어가서 선녀할머니한테 주고 오자.
아이는 할머니가 혼자서 덩그러니 남겨진 모습이 안쓰러웠나 보다. 작은 손으로 날갯짓을 흉내 내며 날개옷을 만들자고 한다.
우리는 이야기가 모두 끝났다며 덮어버렸을 마지막장의 그림도 아이에게는 이야기가 된다. 글자라는 틀에 갇혀 내가 발견하지 못한 이야기를 아이는 더 자유로운 눈을 가지고 찾아낸다. 아이들과 책을 읽는 묘미이다.
아이들이 책을 통해 갖는 생각과 감정도 놓칠 수 없다. 혼자 남겨진 할머니에게서 느껴지는 쓸쓸함, 할머니에게 날개옷을 양보해 주자는 착한 마음, 동화책 속에 들어가서 드리고 오자는 귀여운 상상 모두 오늘 우리가 책 속에서 느끼고 얻은 소중한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으면 그림과 글에서 전해지는 동심에 한 번 마음이 움직이고, 아이들이 가진 그들만의 동심에 또 한 번 마음이 움직인다.
이렇게나 어여쁜 동심을 아이들이 잊지 않기를, 나중에 자라서 다시 그림책을 보면 이 마음을 기억해 내기를 바란다. 지금의 나처럼..
- 할머니가 못 생겼어.
책을 한 번 더 읽고 나서야 책을 덮은 아이가 책 표지를 자세히 바라보며 또 말했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가 싫지는 않은지 계속 한참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