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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니 Jul 14. 2023

가정주부가 혼자 먹는 점심

예쁜 그릇에 담지 않아도 맛은 있다

  모든 가정주부가 혼자 밥을 먹을 때 나처럼 먹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먹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은 내 단출한 밥상을 보여주며 가정주부가 혼자 먹는 식사는 이렇게 초라하다며 신세 한탄을 하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다.

  오히려 이 밥상은 나에게 꼭 맞는 밥상이다. 그래서 만족스러움에 찍은 사진이다.




  점심밥을 먹기 위해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점심에 혼자 있는데 밥을 해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매번 햇반을 사다 놓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전날 저녁에 내가 한 끼에 먹을 만큼의 쌀을 더 넣어 밥을 짓는다. 그리고 밥이 지어지면 바로 덜어서 냉동실에 넣는다. 그러면 다음날에도 금방 한 밥처럼 먹을 수 있다. 갓 지은 밥을 제일 먼저 덜어낸 것이 나를 위한 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가족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래도 왠지 기분이 좋다.


  요즘 점심에는 김치랑 김, 가끔 라면, 여름이 되면서는 대접에 열무김치와 참기름만 넣고 고추장에 쓱 비벼 먹는 경우가 많다. 계란프라이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다. 그런데 오늘은 어제 남은 국도 먹어야 할 것 같고 해서 국을 떠놓고 보니 제법 한 상 차림이 되었다. 왠지 모르게 사진을 찍다가 문득 어느 연예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집에서 혼자 밥 먹을 때도 예쁜 그릇에 정성스럽게 밥을 차려서 먹으니 나를 더 대우하는 것 같았다는 말. 예쁜 그릇은 고사하고 냉동밥을 데워서 밥그릇에 옮기는 것조차 하지 않은 내 상차림을 보고 잠시 생각했다. 나는 나를 잘 대우하고 있는가?


  대답은 ""이다. 자신 대우하는 방법은 다양하고 각자의 선택은 다를  있다.

  내가 나 자신을 대우하는 방법은 그와는 좀 다르다. 우선 최소한의 식기를 사용하여 식사를 마치고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설거지를 끝낸다. 그리고 그 후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진다. 그 시간에 전날 읽다가 덮어둔 책을 꺼내어 읽어보기도 하고, 브런치에 올릴 글을 작성하기도 하며 커피를 호록거리며 마신다. 이 시간이 나에게는 진정한 힐링이고 찐으로 나를 위한 시간이다. 나는 이렇게 나름 우아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부여함으로써 나 자신을 대우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그릇에도 담지 않은 상차림이 나에게는 초라한 밥상이 아니라 딱 나를 위한 밥상인 것이다. 그 이후에 주어질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게으른 자가 잔꾀를 부리며 즐겁게 차린 밥상이다.


  물론 평소에도 내가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가족과 먹는 식사에 멋진 상차림을 해놓고 뿌듯해하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취향은 다 다르다. 나는 그들의 취향도 존중하고 나의 취향도 존중한다.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것은 없다.


  오늘 나의 간단한 상차림에는 밥과 국이 있고 반찬도 두 가지다. 대단한 요리가 있지는 않지만 속을 뜨끈하게 데워줄 말갛고 달큼한 어묵탕이 있고, 내가 좋아한다고 큰 이모가 담아주신 시원한 열무김치, 그리고 시부모님께서 주말마다 시골집 텃밭을 가꾸어 정성스럽게 키운 상큼하고 알싸한 고추가 있다. 그리고 나의 최애 중 하나인 고추장도 있다. 생각할수록 이 밥상이 참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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